7월 3일에 쓴 글(성범죄자들이 '딸 같아서 그랬다'고 변명하는 이유)에서, 함무라비 법전 이야기를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지만 어떤 사람의 아들을 죽게 했을 경우 가해자 본인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 대신 죽는다. '동해보복법(同害報復法)'인 '탈리오 법칙(lex talionis)'을 적용해서, 똑같이 아들을 잃는 피해를 당하게 하는 것이다. 친딸을 성폭행한 경우에는 다른 남성의 아내나 딸을 성폭행했을 때보다 약한 벌을 받는다. 다른 남성에게 피해를 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함무라비 법전은 처자식을 가부장의 재산으로 여기는 고대인들의 '망탈리테(집단적 사고방식)'를 보여주는 좋은 사료다. 그래서 21세기 현대에도 성추행범들은 '딸처럼 여겨서 그랬다'며 변명한다. 내 딸 같은 여성이니까 가부장인 내 맘대로 해도 큰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함무라비 법전의 영향으로 지금 이런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인권보다 가부장의 권리를 먼저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고대부터 현재까지 있음을 함무라비 법전을 통해 단적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여성은 가부장의 재산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고대의 기록으로 구약 성경도 있다. 기독교의 십계명 중 '간음하지 말라'는 부부 사이의 정절 등 도덕률을 지키라는 말이 아니다. 여성의 인권을 존중해서 성폭력을 금하는 것도 아니다. 성경의 '출애굽기' 20장을 보자. 14절에 '간음하지 말라'라고 간단히 언급한 계명을 17절에 다시 길게 서술하고 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즉, '간음하지 말라'는 말은 '이웃의 재산인 여자를 탐내어 이웃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라'는 말이다. 강간은 남성이 다른 남성에게 저지르는 재산상의 범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머나먼 고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5년 개정 전까지 성폭력을 규정한 형법 제32장은 '정조에 관한 죄'였다. 여성의 정조를 유린하여 여성의 주인인 남성에게 피해를 준 죄란 뜻이다. 지금은 다를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성추행범을 잡아 경찰에 넘기면 종종 생기는 상황이다. 경찰 앞에서도 욕하며 큰소리치던 범죄자가 피해 여성의 아버지나 남편, 오빠, 남자친구가 나타나면 90도 각도로 절하면서 그 남성들에게 사죄한다. 너의 물건에 손대서 미안하다는 의미다. 심지어 합의해 달라고 비는 것도 피해 여성이 아니라 친지 남성들에게 한다. 이 황당한 경험을 해본 여성들은 꽤 많다. 나도 겪은 일이다.
이렇듯, 처자식을 가부장·남성의 소유물로 여기는 것을 당연시하는 고대인의 망탈리테는 너무도 건재하다. 지난번 글에 "이게 뭔 소리지? 그냥 정신나간 놈들이 문제지 뭔 함무라비 법전을 들고 나와서 머언~ 옛날부터 남자의 인식이 문제인 양 썰을 푸냐?"라는 댓글이 달렸다. 하지만 일부 파렴치한 범죄자들만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 아니다. 피해 여성의 편에서 성폭력범을 욕하는 선량한 시민들 역시 그러하다. 남자들의 인식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여성들도 그렇다.
"너 딸도 똑같이 당해라!" "저놈 마누라도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 성폭력 기사에 흔히 달리는 댓글이다. 성폭력범이나 범죄자에게 가벼운 선고를 내린 판사를 겨냥하고 쓰는 말이다. 실제로도 이런 말을 나름 정의롭게 하는 분들을 본 적이 있다. 왜 이렇게 말할까? 죄는 가해자가 지었는데 왜 가해자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여성들이 벌을 받아야 할까?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 혐오의 한 패턴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젊은 남성들이 외제차 타는 남성이 아니라 운전석 옆에 앉아 있는 여성을 욕하는 것처럼, 무슨 일이 생기면 비난의 화살은 여성에게 먼저 꽂힌다. 친부 성폭력 사건에도 딸을 보호하지 못한 친모를 욕하는 등, 남성이 잘못했을 때도 관련된 여성먼저 비난한다. 심지어 성폭력 사건 기사를 접해도 가해 남성이 아니라 "여가부는 뭐하냐?" "페미니스트들은 뭐하냐?"며 여성들을 욕하곤 한다.
여기에 함무라비 법전의 경우를 더해서 보자. 여성은 같은 인간이 아니라 가부장·남성의 재산이다. 주차된 자동차를 들이받은 사람은 "아프게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자동차에 사과하지 않는다. "차를 망가뜨려서 죄송합니다"라고 차 주인에게 사과하고 차 주인에게 변상해 준다. 자동차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것이 바로 성폭력 범죄에 반응하는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이다.
여성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고대인의 망탈리테를 가진 사람들은 피해 여성의 고통에 관심이 없고 가해 남성의 미래를 걱정해준다. 여성은 앞서 예를 든 자동차처럼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므로, 가해자는 같은 인간으로서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남성, 즉 피해 여성의 아버지나 남편 등 가부장의 재산을 망가뜨린 셈이 된다. 그러므로 함무라비 법전에 의거하여 벌은 가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아내나 딸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가해자의 재산도 망가뜨려야 공평하다. 그러므로 끔찍한 성범죄에 분노하여 정의롭게 "가해자의 딸, 아내도 똑같이 당해라!"라고 외치는 것은 '다른 남성의 재산인 여성을 건드려 남성에게 피해를 줬으니 너도 같은 재산 피해를 당해 봐라'라는 뜻이다. 이는 전혀 정의롭지 않다. 여성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 발언이다. 함무라비 시대의 사고방식에 기인한.
누누이 강조하지만, 지금은 21세기다. 바꾸자.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인권을 가진 인간이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벌은 당연히 가해자가 받아야 한다. 가해자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성들을 언급하지 말자.
이외에도 여성을 가부장·남성의 재산으로 보는 증거는 많다. 어떤 남성이 사귀자고 한 여성을 괴롭힐 때, "싫어요"라고 하면 물러나지 않는다. "남친 있어요"라고 말해야 포기한다. 여성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지만 다른 남자의 재산에 손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귀다가 헤어지자고 하면 상대 여자를 때리거나 죽이는 남자들도 있다. 물건은 주인을 거부할 권리가 없으니 일단 괘씸하고, 또 내가 못 쓰게 된 물건이니 버리더라도 이후에 다른 남자가 못 쓰게 망가뜨리는 심보다.
서비스직 여성을 성희롱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딸이다'라는 것은 왜 강조하는가? 여성을 같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기에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된다면 못 알아듣고, 그 여성의 주인인 남성의 입장을 생각해야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사에 분노하면서 '우리도 일본 여자 강간해서 복수하자!'라는 댓글을 다는 일부 남성들의 망탈리테는 또 어떠한가? 이 부분은 이유를 잘 알지만 차마 못 쓰겠다.
"중동의 고대 법전에 기반한 사고방식이 한국인의 뿌리 깊은 사고방식이 되었을 것이라는 전제가 이상한데. 함무라비 법전이 삼국 고려 조선 시대를 아우른다고?" 지난번 '함무라비 1편' 글에 위와 같은 댓글이 달렸다. 자, 답을 드린다. 함무라비 법전은 3,750여 년 전 고대 시대의 법전이다. 지금은 고대에서 중세와 근대를 거쳐 현대 시대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역사학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대 구분이 의미 없다. 오직 한 시대, 가부장제(家父長制·patriarchy) 시대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녀들이 이젠 아빠들을 전부 성범죄자로 몰아가는구나. 니 애비도 성범죄자냐?"라는 댓글이 그 증거다. 형법에서 금하는 범죄를 하지 말라는 지당한 글을 써도 여성이 가부장·남성의 허물을 거론하면 공격받는다. 물건이 주인을 감히 공격하니 일단 화가 나는 것이다. 여전히 함무라비의 법이 가부장·남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시대이기에 그렇다.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고대인이고 함무라비의 신민이다. 내가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이 시대에 살고 이 문화의 영향을 받는 이상, 의식적으로 깨치고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은 그러하다. 어떠신가? 함께 이 시대를 종결시켜서 구시대의 마지막 목격자가 되어 보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