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직진하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리더십이 깊은 상처를 입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덜컥' 합의했다 번복한 것이 자충수가 됐다. 13일 국민의힘에선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를 공격이 이 대표를 향해 쏟아졌다.
이 대표는 '새 정치의 기대주'로 떴다. 중대한 정책 결정을 일방적으로 내렸다 뒤집은 것도, 이번 사태의 책임을 '당 대변인과 언론 탓'으로 돌린 것도 '새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대표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합의 과정을 직접 설명하겠다면서 13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해명이 급했다는 뜻이다. 그는 "송 대표와의 합의는 '확정적 합의'라기보다 '가이드라인'에 가까운 것"이라며 거듭 진화를 시도했다. "우리 당 원내지도부와 이견은 없다"고도 했다.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경 협상은 원내대표 담당으로, 대형 현안은 정당 '투 톱'인 당대표와 원내대표가 합의해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말은 달랐다. 그는 '이 대표와 사전에 교감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런 얘기는 없었다"고 했다. 이어 "(이 대표가) 전 국민에 지원한다고 합의했다는 건 팩트가 아니다"며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대표의 독단적 합의였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당직자는 "이 대표가 정치 베테랑인 송 대표를 만나 실수한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전 국민 지급 반대'에 가로막힌 송 대표는 이 대표의 협조를 얻어내 돌파구를 만들려 했다.
보수의 철학은 '선별 복지'다. 전 국민에 재난 지원금을 나눠 주는 대신 경제적 피해가 집중된 소상공인·자영업자에 '핀셋' 지원을 하자는 게 국민의힘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전 국민 지급으로 선회하려면, 의원총회와 최고위원회 등 당내 의사결정 단계를 밟는 게 정석이다.
이번에 전 국민 지급을 결정하면,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선별 복지 원칙을 고수하기 어려워지고, 문재인 정부의 '복지 퍼주기'를 비판할 명분도 흐려진다. 국민의힘 대선주자들이 격하게 반발한 건 그래서다.
홍준표 의원은 "전 국민에게 용돈 뿌리기는 이제 그만하라"고 했고, 원희룡 지사는 "독단적 스타일을 보인다면 당과 함께 하기 어렵다"고 직격했다. 윤희숙 의원은 "철학의 붕괴"라고 비판했다.
평소 '쿨함'을 강조하던 이 대표는 정면돌파로 대응하지 않았다.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변인들이 기자들에게 설명할 때) 논의 과정에 있었던 고민이 전달되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양당 수석대변인이 브리핑을 잘못하고, 언론이 곡해했다고 화살을 돌린 것이다.
이 대표의 '남 탓'은 또 다른 비판을 샀다. 당 대변인을 지낸 국민의힘 의원은 "대변인의 역할은 전달자인데 여야 대표가 합의하지 않은 것을 불쑥 말할 수 있었겠느냐"며 "책임을 떠넘기는 건 이 대표의 평소 모습과 다르다"고 꼬집었다.
최근 들어 이 대표의 리스크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 대표의 여성가족부·통일부 폐지 주장과 반중(反中) 정서를 자극하는 언론 인터뷰 등으로 국민의힘은 연일 시끄럽다. 당 관계자는 "국민의힘에 필요한 건 정권교체를 위한 '관리형 대표'인데, 이 대표가 자기 정치 욕심이 과한 것 같다"며 "대선 정국의 당대표는 본인이 아니라 대선 주자를 빛내줘야 하는 자리"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