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고민에 빠졌다. 남쪽 앞바다 카리브해 국가들의 잇따른 혼란 때문이다. 대통령 암살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아이티에 이어 눈엣가시 쿠바도 반정부 시위로 시끄럽다. 아이티 미군 파병 여부와 쿠바 시위 지원 등 난제를 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장고에 들어갔다. 인접국 외교를 관리하지 못하면 안방이 불안해져 중국과 이란 등 다른 문제를 신경 쓰기 어려운 측면도 있어서다.
아이티 문제의 경우 여러 상황이 겹쳤다. 우선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 암살 과정에서 미 마약단속국(DEA) 정보요원 출신 아이티계 미국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의혹 해소가 필요하다. 미국 정부 차원에서 암살을 지원했을 가능성은 낮지만 미국인들이 이번 사안에 왜 엮였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여기에 아이티 측이 요청한 미군 파병 여부도 가닥을 잡아야 한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12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아이티 측의 미군 파병 요청 검토 관련 질문에 “(검토 중인 게) 맞다”라고 답했다. 파병의 문을 열어둔 셈이다. 앞서 존 커비 국방부 대변인이 11일 파병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한 데 이어 백악관까지 이를 확인한 것이다.
아이티 현지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무부, 국토안보부, 연방수사국(FBI) 관계자들이 11일부터 총출동해 상황을 파악하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아이티 파병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11일 시작된 쿠바 반정부 시위도 골칫거리다. 공산주의 국가 쿠바에서 30여 년 만의 최대 규모 시위가 수도 아바나와 주요 도시 등에서 이어졌다. 피델 카스트로 형제가 물러나고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쿠바 정부의 사회 장악력은 떨어졌다. 여기에 오래된 미국의 경제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난 때문에 민심이 더 악화했다. 또 인터넷과 스마트폰 확산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시위 계획 공유도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시위대가 외친 ‘자유’와 ‘독재 타도’는 바이든식 가치외교와도 맞닿아 있다. 바이든 대통령도 12일 성명에서 “쿠바 국민들은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를 용감하게 주장하고 있다”며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와 자신들의 미래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 등이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쿠바 정부를 ‘권위주의 정권’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 발언은 수십 년 이어진 양국 간 적대를 해소하고 ‘과거의 족쇄’를 풀자고 강조했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입장에서 현저한 기조 변화를 보여줬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화당의 압박은 거세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이날 성명에서 쿠바 시위 지지 의사를 밝히며 “바이든 행정부는 즉시 세계를 향해 분명하고 강력하게 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도 “미국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쿠바를 지지한다”라고 밝혔다. 쿠바 출신이 많이 사는 미 플로리다주(州)를 중심으로 쿠바 정부를 뒤집어야 한다는 보수 여론은 항상 존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분위기를 다독이기 위해 쿠바 시위 지지 성명을 냈지만 어느 정도까지 압박 수위를 올릴지는 미지수다. 외교와 국내정치 양 측면을 모두 신경 써야 하는 어려움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