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청소노동자가 교내에서 숨지는 일이 2년 만에 재발했지만, 학내 일부 건물에선 청소노동자들이 휴식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화장실을 쉼터로 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는 2019년 60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이후 청소노동 업무 환경을 대폭 향상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처럼 개선 조치가 미진한 현장이 적잖은 가운데 지난달 50대 청소노동자 이모씨가 또다시 과로 논란 속에 숨지면서 학교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12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대 관악캠퍼스 관정도서관에선 청소노동자 21명이 건물 내 별도의 휴게시설 없이 근무하고 있다. 관정도서관은 2015년 건립된 서울대 중앙도서관 별관으로, 연면적 2만7,000㎡에 열람석 4,000개를 갖춘 8층짜리 대형 건물이다.
이 건물 청소 담당자들은 몇몇 화장실 내 비품 보관용 칸에 간이 휴식 공간을 마련했다. 벽 쪽에 의자 하나를 놓고 그 앞을 휴지 상자를 쌓아 가렸다. 폭이 세 뼘 정도에 불과해 한 사람이 겨우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2층 복도 끝 숨은 공간도 휴게 공간이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도 빠듯한 공간 안쪽에 책상과 의자가 하나씩 비치됐다. 외부 시선을 가려줄 가림막이 없으니 청소도구가 실린 수레로 입구를 가리고 복도 쪽을 등진 채 쉰다.
학생들은 열악한 청소노동자 처우를 비판하고 있다. 2학년 이모(21)씨는 "도서관 화장실에 갔다가 휴지 박스 뒤에서 나는 소리에 놀라 들여다보니 사람이 있었다"며 "이렇게 큰 건물 안에 청소노동자가 앉을 의자 하나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1학년 B(18)씨는 "착공 당시 휴게실을 염두에 두지 못했더라도 추후 2, 3개층마다 한 곳씩이라도 휴게실을 만들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는 관정도서관 청소노동자를 위한 전용 휴게 시설을 갖췄다는 입장이다. 학교 측 설명에 따르면 관정도서관과 맞은편 대학 중앙도서관 본관 사이 건물에 청소노동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5, 6인용 휴게실 5곳(여성 3, 남성 2)과 샤워실 2곳이 있다. 학교 관계자는 "2019년 이후 청소노동자 휴게 시설의 규모와 수준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하나뿐이던 샤워실도 남녀 전용으로 확충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화장실 비품 박스 뒤 공간은 일부 근로자가 본인 의지로 만든 걸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들은 해당 휴게 시설이 사용 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관정도서관 청소노동자 A씨는 "우리뿐 아니라 대학 중앙도서관, 자연대 등 주변 건물 근무자들도 들르기 때문에 공간이 비좁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도서관 청소원 21명의 전용 휴게실이며 주변 건물 근로자는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청소노동자들은 휴게 시설이 청소 담당 건물 바깥에 있어 현실적으로 이용이 쉽지 않다고도 지적한다. A씨는 "도서관 건물이 워낙 넓어 일하는 중간중간 쉴 필요가 있는데, 그때마다 휴게실에 다녀오기엔 시간도 체력도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코로나19 유행 이후엔 한 공간에 여럿이 모여 있기가 신경 쓰여 휴게실 사용을 더 꺼리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한편 청소노동자 이씨 사망을 두고 학교 책임론이 일자 이를 원색적으로 비난해 논란을 샀던 구민교 서울대 학생처장은 이날 학교 측에 보직 사표를 냈다. 구 처장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 "한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역겹다"는 글을 올렸다. 서울대 측은 13일 사표 수리 여부 및 관련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