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수천 명의 시민이 거리로 뛰쳐 나가 정부를 향해 억눌렸던 분노를 터뜨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를 당국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음식과 의약품 등 생필품 부족 상태에 직면하게 되자 민심이 이반한 것이다. 정부는 미국의 제재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며 ‘혁명 정신’으로 쿠바를 지키자고 성난 대중을 다독였지만, 시민들의 좌절감이 누그러질지는 미지수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수도 아바나와 제2 도시 산티아고 등 쿠바 전역에서 이날 수천 명이 반(反)정부 시위에 나섰다. 오랜 경제난과 물자 부족 현상을 겪어 온 데다, 이제는 코로나19 위기까지 고조됨에 따라 시민들 고통이 임계점에 도달한 탓이다.
실제로 쿠바의 코로나19 상황은 역대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날 신규 코로나19 확진자는 6,923명으로, 지난 9일에 이어 또다시 사상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풍부한 의료 인력과 엄격한 통제 덕분에 눈에 띄게 선방했던 코로나19 초기와는 달리, 최근 들어 쿠바 상황은 급격히 악화했다.
특히 시민들은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정책과 백신 접종 속도 등을 비판한 것은 물론, 정전 및 의약품·식료품이 부족한 현실에 대해서도 항의했다고 로이터통신은 보도했다. 일부 흥분한 시민들이 경찰차를 뒤집는 등 폭력적 행동을 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시위 현장에 대규모의 경찰 인력이 배치됐고 난투극도 몇 차례 벌어져 일부 시위대가 체포되긴 했으나, 심각한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공산당 일당독재 국가인 쿠바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NYT는 “1994년 대규모 쿠바 탈출 사태 이후 최대 규모의 반정부 행동”이라고 전했다. 쿠바 활동가 카롤리나 바레로도 “(피델 카스트로가 집권한) 1959년 이후, 가장 큰 반정부 대중 시위”라고 NYT에 말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후폭풍으로 볼 수도 있다.
급기야 공산당 제1서기를 겸하고 있는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까지 현장을 찾았다.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는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이날 첫 시위가 열린 아바나 근교 산안토니오데로스바뇨스를 찾아 시민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영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시위는) 혁명에 반하는 체계적 도발”이라며 “누구라도 우리의 상황을 조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어 “현재 쿠바 상황은 수년 전부터 계속된 미국의 경제 봉쇄로 심화해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쿠바 외무부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를 통해 “쿠바인들은 미국 정부가 모든 사태의 가장 주요한 원인임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민생 악화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기는 ‘전가의 보도’를 다시 꺼내 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