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에서 한발 물러서는 듯하더니 이번엔 통일부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연일 "통일부를 없애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통일부를 둔다고 통일에 특별히 다가가지도 않는다", "지금껏 보여준 남북관계 성과가 없다", "정부의 방만이고 혈세 낭비"(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글)라는 게 주된 논리다. '마땅히 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으니 존재 이유가 없다'는 '사망 선고'다.
통일부를 없애라는 이 대표의 주장에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비판과 지적이 쏟아졌지만, 이 대표는 '제대로 된 반론이 없다'고 오히려 역정을 내는 상황이다.
과연 그러한가. "실질적으로 역할과 실적이 모호한 통일부가 부처로 존재할 필요는 없다"는 이 대표의 주장을 "어불성설"로 일축하며, 통일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통일부 존치론'의 근거들을 한번 모아봤다.
이 대표의 통일부 폐지론의 핵심은 "기형적 부서가 가져오는 비효율성"이다.
처음 통일부 폐지론을 띄운 9일 CBS 라디오 프로그램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를 보자. 그는 "단순하게 통일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외교의 업무와 통일의 업무가 분리된 게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일 수 있다"며 "외교의 큰 틀 안에 통일이란 게 있다"고 했다. 통일을 외교 업무의 하나로 분류하는 태도다.
이에 대해 통일부가 있어야 한다는 인사들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외면한 발상"이라고 꼬집는다. 평화통일을 규정한 헌법과 남북을 '특수한 내부관계'로 인정한 남북기본합의서를 부정하는 것이란 지적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돼 있고,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건 헌법 제4조에 명시돼 있다. 또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 잠정 형성된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이 대표의 말대로, 외교부가 남북대화와 대북협상을 맡게 되면 민족공동체의 일원이자 평화통일 대상인 북한을 외국으로 간주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헌법과 남북기본합의서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으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라고 이 대표의 '통일부 폐지, 외교부 통합론'을 꼬집었다.
그는 "북한은 외교의 대상이 아니다. 전 세계 수많은 국가 중 하나로 북한을 바라보고, 평범한 외교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순간, 분단은 고착화된다"고 받아쳤다. 이어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평화적 통일'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윤 의원은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은 당장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가 없더라도, 꾸준히 노력해야 할 대한민국 정부의 책무"라며 통일부를 평화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평화부'로 확대 개편할 것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통일부 폐지의 근거 중 하나로, 대만에 통일부가 없다는 사례를 들었다.
그러나 당장 기준점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국민의힘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부터 당혹감을 표시했다.
그는 역사상 분단국가였던 동서독, 예멘, 베트남, 중국과 대만(양안관계)을 언급하며, 우리의 분단 극복 과정에서 가장 좋은 모델은 동서독 통일 사례라고 반론을 시작했다. 전쟁과 내전을 겪은 베트남과 예멘, 국력 차이로 인한 갈등이 심한 양안의 모델을 따르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냐고 되물으면서다.
권 의원은 서독의 내독관계부(최초에는 전독일문제부) 사례를 롤모델로 꼽으며 "우리의 통일부가 할 일은 당장 통일을 이뤄내는 게 아니라 분단을 극복하는 과정 중에서 남북한 간 교류 협력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건영 의원처럼 통일부의 역할에 대해 당장의 통일이 아니라 남북 교류 협력을 통한 점진적 평화 단계론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통일부 존치론을 힘주어 언급한 권 의원은 "국정은 수학이 아니다. 인수분해하듯 나눠줄 수 없는 일"이라며 "쓸데없이 반통일 세력의 오명을 뒤집어쓸 필요도 없다"고 이 대표를 향해 진심 어린 충고를 날렸다.
일각에선 이 대표가 흡수통일만을 상정해놓고 통일부 폐지를 주장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과 함께, 그렇다 하더라도 통일부를 없애고선 그에 대한 대비가 가능하겠냐고 따져 묻는 '현실론'도 나왔다. 흡수통일 주장은 이 대표가 천안함 유가족과 만나 "흡수통일 외 다른 방법이 있겠냐"고 언급한 것을 토대로 삼았다.
김성회 열린민주당 대변인은 이 대표를 향해 "북한 붕괴 이후 중국이 북한을 접수하거나, 혹은 한국과 미국이 북한 영토에 대해 제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북한으로부터 내려오는 대량 난민에 대한 지원은 누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이 대표의 논리대로라면, 적대국에 대한 지원 대책을 외교부 산하 통일위원회 정도가 처리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북한 붕괴-흡수통일 시나리오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통일부는 3배는 더 키워야 할 것"이라며 적대적 흡수통일을 꿈꾸기보다 평화적 공존을 만들어나가는 실질적 대안을 만드는 데 집중하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여러 비판이 이어지자 "'작은 정부론''은 그 자체로 가벼운 정책이 아니고 반박하려면 '큰 정부론'이라도 들고 오거나 국민에게 '우리는 공공영역이 커지기를 바란다'라는 입장이라도 들고 오라"고 쏘아붙였다. 통일부 폐지론의 논점을 흐리며 '작은 정부론' VS '큰 정부론'을 구도를 끌고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선 이 대표의 '작은 정부론'의 핵심이 무엇인지 되묻는 지적이 무성하다. 당장 실적이 없고, 한번 정책에 실패하면 무조건 없애자는 게 작은 정부론이냐는 반론이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이준석 논리대로라면 도둑 놓치면 경찰 뭐했냐며, 경찰 월급 아까우니 경찰청 폐지해야 하고, 전쟁도 일어나지 않는데 국방부 혈세 아깝다고 국방부 폐지해야 하는 거냐"며 "이런 식으로 다 폐지하고 나면 소는 누가 키우느냐"고 꼬집었다.
진보진영 원외 군소정당인 미래당 오태양 대표는 "이준석 대표의 통일부, 여성가족부 폐지 공론화 주장은 시장경쟁 만능주의에 기초해 끝없이 시장효율만을 강조하고 국민 갈라치기와 사회적 소수자·약자에 대한 차별을 증폭시키는 정치적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준석의 작은 정부론은 '시장의 먹이사슬'만이 '공정한 경쟁'이라는 환상에 경도되어 있는 '시장정부론' 아니냐"고 직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