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된 '가짜 수산업자' 김모(43)씨가 정·관·언론계 인사에 대한 금품 로비 의혹이 불거진 이후 처음으로 법정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재력을 과시하며 정치권과 검찰, 언론계 인사들을 만나왔던 대담한 면모와 다르게, 김씨는 이날 법정에선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양철한)는 7일 오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상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씨에 대한 세번째 공판 기일을 열었다.
이날 황토색 반팔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선 김씨는 변호인 이모씨 옆에 붙어 앉아 몸을 웅크린 채 약 20분 간의 재판 내내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 변호사는 박영수 특별검사가 이끌던 국정농단 사건 특검팀 출신으로, 박 특검이 김씨에게 포르쉐 차량을 제공받은 것과 관련해 "박 특검에게서 렌트비 250만원을 받아 김씨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김씨는 2018년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선동 오징어(배에서 잡아 바로 얼린 오징어)' 투자를 미끼로 7명의 피해자로부터 총 116억2,000여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 중에는 김무성 전 국회의원의 형과 2016년 20대 총선에서 경북 한 지역의 예비후보로 출마했던 전직 언론인 송모씨가 포함돼 있다. 김씨는 자신이 1,000억원대 유산을 상속 받은 것처럼 피해자들을 속여 선박 운용 및 선동오징어 매매 사업 명목으로 투자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한 사기 피해자가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항의하자 자신의 수행원들과 함께 피해자를 협박(공동협박)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해당 피해자가 과거 자신에게 빌려준 승용차를 다시 받아오도록 수행원들을 교사한 혐의도 있다.
김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사기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협박 및 공갈에 대해서는 부인하는 취지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날 검찰 측 증인 2명을 신문하기로 했으나, 두 사람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피해자 중 일부는 김씨 변호인을 통해 재판부에 합의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김씨는 부부장검사로 강등된 이모 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 직위해제 된 전 포항 남부경찰서장,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엄성섭 TV조선 앵커 등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청탁금지법 위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변호인 이씨는 재판을 마친 뒤 "이건은 그냥 사기 사건이지 '게이트(대형 비리 의혹)'가 아니다"라며 "본인(김씨)은 반성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