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에 김치만 있어도'라는 관용구가 암시하듯이 한국인에게 김치란 밥을 먹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반찬이다. 흔하디 흔해 소홀했을까. 중국산 김치 파동은 '김치가 거기서 거기지'라는 인식에 제동을 걸었다. 워커힐 호텔 '김치 주방'에서 30년 일한 김치 전문가, 이선희 전 김치 총괄 셰프를 만나 맛있는 김치, 좋은 김치에 대해 물었다.
그도 처음에는 김치를 "하찮게 봤다"고 했다. 김치라는 게 배추 절이고, 속 넣으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10년차쯤 본인이 책임자가 돼서야 그게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김치는 배추 절임 상태, 양념 비율에 따라서 맛이 정말 미묘하게 달라지거든요. 거기다가 한식이나 양식은 바로 만들어서 맛있다, 없다가 바로 확인이 되는데, 김치는 발효 식품이니까 숙성돼야 맛을 알 수 있잖아요. 그때 한창 '김치가 맛없네' 이런 말 들으면 죄책감까지 느껴지고 김치가 너무 어렵고 힘들었던 때가 있었죠."
그렇게 호텔 주방에서 김치만 만든 30년, 이제는 맛보지 않아도 담근 상태만 보면 맛을 아는 경지가 됐다. 발효 식품이라는 김치의 특성은 이 셰프를 힘들게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김치의 매력에 빠지게 했다. 그는 "나박물김치만 봐도 맹물에다가 고춧가루 풀고 마늘, 생강, 소금 조금 넣은 게 다인데, 익으면 신기하게도 탄산감이 기가 막힌 김치로 바뀐다"며 "김치의 매력은 뭐라 해도 발효"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 김치 전문 매장인 '배리김치'를 낸 것도 발효 식품인 김치를 제대로 만들겠다는 생각에서다. 호텔부터 편의점, 홈쇼핑 어디서나 김치를 팔지만 제대로 담근 김치는 많지 않다는 게 그의 평가다. "시판되는 많은 김치가 발효됐을 때 김치에서 자연적으로 나오는 유산균을 미리 넣어요. 집에서 담글 때 넣지 않는 첨가물을 넣는 경우가 많고요. 그러니까 시판 김치는 바로 먹으면 맛있어도 익을수록 맛이 없는 거예요." 그는 그러면서 "고리타분하더라도 우리가 아는 방법대로 전통을 지켜서 만들었을 때 김치 맛이 가장 좋다"고 덧붙였다.
그는 중국산 김치 파동을 보고 "터질 게 터졌구나 했다"고 했다. 중국 김치 공장을 견학갔을 때, 공장 내부를 보여주는 것을 거부하는 관계자들을 보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김치를 싸게만 만들어달라고 한다고 하더라"며 "그러다 보니 중국산 김치 대부분이 찹쌀로 풀을 쑤어서 담그는 게 아니라 더 싸고 편한 알파미로 만든다"고 지적했다. 찹쌀을 끓여서 넣은 김치는 발효되면서 자작한 국물이 나오지만, 알파미로 담근 김치는 삭지 않아 국물이 거의 없고 김치에 양념이 덩어리째 묻어 있는 경우가 많다.
30년을 김치만 담갔지만, 이 셰프에게 김치는 여전히 연구 대상이다. 얼마 전에는 콜라비로 만든 김치를 내놨다. 단맛이 나고 식감이 좋은 콜라비는 여름철 무를 대신하기 적합한 건강한 김치 재료다. 콜라비 김치는 특히 황태 육수 대신 채소 육수를 쓰고 젓갈류를 배제해 비건 김치로 만들었다. 비건이 많은 외국인들의 김치 진입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다. 그는 "외국인들이 김치를 맛볼 때 '이게 진짜 한국 김치다'라고 당당히 소개해줄 수 있는 김치를 담그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