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 요양병원

입력
2021.07.06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018년 1월 45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남 밀양시 세종요양병원 화재는 돈벌이에 급급해 환자들을 인권 사각지대에 방치한 ‘사무장 요양병원’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이 병원의 행정이사는 장례식장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간호사들에게 “환자의 인공호흡기 산소 투입량을 줄이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 비의료인이 의료인의 명의를 빌려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사무장 병원의 문제는 고질적이다. 의사ㆍ병상 등 의료 인프라 부족, 항생제 남용 등 국민건강에 대한 위해, 재정 누수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위협 등 문제를 열거하기도 벅차다. 특히 등급 판정 없이 장기 입원할 수 있는 요양병원 문제가 심각하다. 2009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적발된 사무장 병원(1,632개) 가운데 요양병원(15.8%)은 의원(39.3%)보다 비중은 작았지만 환수결정액(2조60억 원)은 전체 환수결정액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돈벌이'가 되는 요양병원이 사무장들의 주된 사냥감이었다는 얘기다.

□ 문제는 심각하지만 사무장 병원 부당이득금의 실제 환수율은 평균 5.3%에 불과하다. 요양병원은 3.4%밖에 안 된다. 수사에 전문성이 요구돼 수사 기간이 보통 1년 가까이 걸려 사무장들이 재산을 빼돌릴 수 있는 시간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해법도 나와 있다. 건보재정을 관리하는 건보공단에 사무장 병원을 수사할 수 있는 특별사법경찰권을 부여하자는 방안부터, 사무장 병원이 적발될 경우 의사들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내부고발한 의사들에게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리니언시(leniency)제도 도입 등이 국회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사무장 병원 처벌 강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 공교롭게도 지난 2일 법원은 불법으로 요양병원을 개설한 혐의로 기소됐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최모씨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법원은 의료인 자격이 없는 최씨가 비영리법인 이사로 취임해 병원을 인수하고 운영에 적극 개입해 실형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전형적인 ‘사무장 요양병원’ 만들기 수법이다. 안 그래도 빨간불이 들어온 건보재정을 갉아먹는 사무장 요양병원 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왕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