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얘기해야 할 대선에 소모적인 '점령군' 논쟁

입력
2021.07.0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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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에 대해 4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역사 왜곡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문제 삼았다. 가족 범죄와 수사 관여 의혹으로 검증 표적이 된 윤 전 총장이 이 지사 공격으로 이슈를 전환하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선 정국이 이념 공방으로 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역사관이나 색깔론 논쟁보다는 지금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에 집중해 그 해결 능력을 검증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이 지사는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난 1일 경북 안동 이육사문학관을 찾아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단계에서 친일 청산을 못 하고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 체제를 유지했다”고 발언했다. 논란이 되자 "미군이 일제를 무장 해제하고 군사적으로 통제”했다는 의미이며 미군 스스로 쓴 표현이라고 해명했다. 이 해명을 받아들인다 쳐도 이 지사가 논란을 자초한 점은 비판받을 만하다. 친일 청산이 부족했음을 주장해 지지층의 반일 감정을 자극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보수 언론과 국민의힘 주자들이 일제히 비판을 쏟아낸 것 역시 보수층 결집을 겨냥한 것이라 하겠다. 윤 전 총장은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란 황당무계한 망언을 이 지사도 이어받았다. 이에 대해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라며 문재인 대통령, 이 지사, 김원웅 광복회장을 싸잡아 비난했다.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정진석·하태경 의원 등도 비판에서 빠지지 않았다.

대선 주자의 역사관은 검증 대상에 포함되지만 이것을 핵심 문제로 다룰 때가 아니다. 후보들은 표출된 사회 문제의 기저에 양극화와 불평등 격화가 깔려 있음을 파악하고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경쟁해야 한다. 지지층 결집을 위한 소모적 논쟁으로 검증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공동체를 위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이기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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