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내 감기로 병원 갔으면 가입 거절?... 문턱 높아지는 실손보험

입력
2021.07.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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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질환으로 병원 방문했더라도 '가입 거절'
가입 가능 연령 상한선도 낮춰지고 '끼워팔기' 성행
보험사들은 "손해율 높아 어쩔 수 없다"

회사원 김모(30)씨는 지난달 말 실손보험 가입을 알아보다 번번이 가입을 거절당하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1년 내내 감기조차 안 걸릴 정도로 건강한 터라 보험 가입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설계사를 통하지 않고 가입할 수 있는 '다이렉트 보험'의 경우 실손보험 가입을 아예 받아주지도 않았고, 설계사 전화 상담에서는 "3세대 실손(착한 실손)은 기간이 얼마 안 남아 가입이 어려울 수 있으니 암보험을 함께 가입하는 게 어떻냐"는 권유를 받았다. 심지어 "다른 회사 상품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보험사도 있었다. 김씨는 "가입을 못 하게 일부러 막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생명보험사들을 중심으로 실손보험 가입조건이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단순한 감기몸살이나 두통, 장염 등 일상적이고 가벼운 질환이 이유였더라도 2년 내 병원을 단 한 차례라도 방문했다면 아예 실손보험 가입을 거절하는 곳이 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스케일링이나 충치 치료 등 연례적인 치과 방문을 문제 삼아 보험 가입 퇴짜를 놓는 경우도 있다.

실손보험 가입이 가능한 나이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한화생명은 실손보험 가입 가능 나이를 기존 65세에서 49세 제한으로 대폭 낮췄고, 삼성생명은 70세에서 60세로 상한선을 내렸다.

비교적 실손보험 비중이 높은 손해보험사들도 가입 문턱을 높이기는 마찬가지다. 삼성화재는 이달부터 최근 2년간 수령한 총 보험금이 50만 원을 초과할 시 실손보험에 가입할 수 없도록 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100만 원이던 기준이 절반 수준으로 낮아진 것이다.

보험사들도 할 말은 있다. 실손보험으로 인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만큼 '병원에 안 갈 만한' 고객을 가려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 보험 설계사는 "솔직히 실손보험은 팔면 팔수록 보험사에 손해인 구조라 많이 판매하더라도 회사에 눈치가 보인다"며 "실손보험에 다른 건강보험 상품을 묶어서 팔도록 장려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근 동양생명과 ABL생명이 4세대 상품 출시를 포기하는 등 점차 실손보험을 취급하는 보험사가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가입 문턱마저 크게 높아지면서 피해는 국민들에게 오롯이 돌아가고 있다. 실손보험은 국민의 75%에 해당하는 약 3,900만 명이 가입했을 정도로 일상 생활에 필수적인 보험 상품으로 인식된다. 업계 관계자는 "손해율이 130%를 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보험사들이 적극적으로 실손보험 판매에 나설 이유가 없다"며 "요율 정상화 등의 조치가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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