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샤넬이 다시 한번 가격 인상을 했다. 샤넬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인 클래식 라지 백은 마침내 1,000만 원을 넘었다. 1,000만 원은 얼마만큼의 돈인가? 서울 시내 웬만한 오피스텔 월세의 보증금이고, 아반떼 중고차 시세와 비슷하다. 세상에서 가장 히트한 로고가 박힌 그 우아한 가죽 가방을 가졌다면, 어깨에 중고차, 오피스텔 보증금 정도는 가뿐히 들고 다니는 셈이다.
돈이 있다고 마음대로 살 수도 없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구매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매장을 열자마자 방문해야 한다. 이른 아침, 매장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달려가기 때문에 ‘오픈 런’이라고 하는데 요새는 새벽 6시부터 줄을 선다. 나는 전 직장이 백화점 옆에 있었기 때문에 이 광경을 실제로 많이 목격해왔다. 백화점을 빙 돌아 늘어진 행렬을 보면서 감탄했던 것이 여러 번. 나도 샤넬이 좋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무리에 끼고 싶지는 않았다. 이러나저러나 가방은 가방일 뿐인데 그걸 위해 아침부터 백화점 앞에서 줄을 서야 한다는 사실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샤넬 가방은 그냥 가방이 아니었다. 자산이었다. 노력 끝에 구매에 성공하면 하루아침에 8~14%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는 고수익 자산. 게다가 일 년에도 몇 번씩 가격이 인상되기 때문에 기대 수익이 상당하다. 주식은 시세가 요동치고 부동산은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샤테크’는 성실하게 노력하기만 하면 가능한, 소자본으로 확실하게 오르는 재테크 아닌가? 이제라도 오픈 런에 동참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우리가 단순히 ‘가방’의 원가나 효용이 무엇이냐고 따졌을 때 가방 하나에 1,000만 원이 타당하다고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샤넬백은 실제로 1,000만 원이 넘었고 그럼에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가격’이라는 것은 재화 자체의 고유한 가치뿐만이 아니라 마케팅, 유통, 인간 심리의 마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아, 이러니까 집값이 끝도 없이 오르는구나.
언론에서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명품 소비 행태를 부각하고, 전문가들은 성실하게 돈을 모아 미래를 준비해야 할 젊은 세대가 사치에 몰두하는 것을 걱정한다. 하지만 나는 젊은 세대가 철없다고 훈계하기 전에 현시대가 성실하게 돈을 모으고 싶은 사회인가 묻고 싶다. 최근 몇 년간 명품 판매가 급신장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천정부지로 상승한 집값으로 인해 앉아서 자산 가치가 상승한 이들이 돈을 더 쓰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아등바등 살아도 집을 살 수 없는 이들이 갖고 싶은 것에나 돈 쓰자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황은 정반대인데 행동의 원인도 똑같고 결과도 똑같다. 역설적이다.
명품 소비 행태를 두고 설교하는 윗세대의 적극적인 재테크와 각종 정책으로 인해 현 주택시장은 젊은 세대가 진입하기에 너무 어려워졌다. 이제라도 집 사려고 알아보는데 ‘억 소리가 나오는’ 시세와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출 정책에 머리가 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샤넬이야 안 사도 인생에 아무 지장이 없으나 주택 가격은 젊은 세대 인생 전반에 엄청난 영향이 있다. 젊은 세대의 과소비에 혀를 차기 전에 성실한 인생이 빛을 볼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