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대신 끌려간 미얀마 5세 소녀, 18일 만에 풀려났지만…

입력
2021.07.02 14:33
"넋 나간 듯 우울" 감금 후유증 시달려 
군부 "2,296명 석방", 감금 인원 절반 안돼 
실명 위기 청년, 美 언론인도 석방 제외 
유엔 "수치 고문 등 모든 구금자 석방하라"

아빠 대신 미얀마 군인들에게 끌려갔던 5세 소녀가 풀려났다. 행방이 묘연한 지 18일 만이다. 소녀는 감옥에서 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소녀는 감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 풀려나지 못한 이들도 많다.

2일 미얀마나우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만달레이주(州) 모곡의 한 마을에 살던 수텟위네(5)는 지난달 13일 엄마(44), 언니(17)와 함께 군인들에게 체포됐다가 지난달 30일 풀려났다. 엄마와 언니는 풀려나지 못했다. 군부 쿠데타 이후 파업한 교사이자 마을의 시위 지도자로 수배령이 떨어진 아버지가 집에 없자 군인들이 가족을 인질로 삼은 것이다. 소녀의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은 구금됐던 지난달 28일 소녀는 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소녀는 석방된 뒤 숨어있던 아빠와 재회했다. 소녀는 구금 기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녀의 아버지는 "감옥에 있는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고 변기 물로 몸을 씻었다고 들었다"며 "활기 넘치던 아이가 지금은 모든 일에 무심한 모습"이라고 현지 매체에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할머니 수(아웅산 수치 국가고문)는 풀려났냐'고 물었는데, 그렇지 않다고 답하자 다시 넋이 나간 듯 우울해졌다"고 덧붙였다.

소녀의 아버지는 딸이 수치 고문 초상화를 들고 반(反)군부 시위 선봉에 선 경위도 설명했다. "쿠데타 초기 가두 시위는 안전하다고 여겼고, 딸이 자신을 시위에 데려가지 않으면 곧 울음을 쏟아낼 것 같았다"는 것이다. 소녀의 오빠(15)와 큰언니(24)도 아버지와 함께 숨어있다. 시위 주동자를 체포하지 못한 군경이 가족을 인질로 삼는 일은 현재 미얀마에서 관행처럼 굳어졌다. 심지어 2세 아기도 인질로 잡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부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가족을 대신해 구금돼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소녀가 석방된 지난달 30일 시위 주동자와 언론인 등 약 2,296명을 풀어주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군정 안정, 유화 정책 과시 등 대내외 홍보용으로 풀이된다.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가 집계한 시위 관련 수감자 수가 5,224명인 걸 감안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게다가 풀려난 이들은 수감 기간 겪은 고문과 비인간적인 대우를 속속 폭로하고 있다.

3월 27일 시위 현장에서 심하게 다친 뒤 군경에 끌려가 오른손을 절단한 대학생 리앙표아웅(22)씨는 실명 위기에 놓인 오른쪽 눈을 치료해야 하지만 이번 석방 대상에서 빠졌다. 가족의 보석 신청도 통하지 않았다. 가족은 "동료들과 함께 풀려날 걸로 기대했는데 해당 사건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자 (괘씸죄로) 석방이 취소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선동 혐의로 5월 24일 양곤 국제공항에서 체포돼 기소된 미국 기자 대니 펜스터 '프런티어미얀마' 편집주간도 이번에 풀려나지 못했다. 세계적인 록밴드 U2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언론은 범죄가 아니다. 펜스터를 즉각 석방하라'는 글을 올렸다. 유엔은 1일(현지시간) 대변인 성명을 통해 "수치 고문 등 쿠데타 이후 군부에 구금된 모든 사람들의 석방을 거듭 촉구한다"고 밝혔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