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언 금품 살포 수산업자 사기 키맨은 언론인 출신 정치권 인사

입력
2021.07.0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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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같은 교도소에 수감되면서 인연 맺어
인터넷 언론사 부회장 직함 얻어 대외활동 확대
"중진 정치인이 농구 관련 단체 회장 추천"

현직 부장검사와 경찰 간부, 중견 언론인들과 어울리며 전방위로 금품을 뿌린 수산업자 김모(43)씨는 2017년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직업이 없는 신세였다. 10년 가까이 고향인 경북 포항 등지에서 소액 사기로 생활비를 벌어 쓰는 생계형 범죄자에 가까웠다.

김씨의 인생은 2016년 11월 사기죄로 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것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이듬해 12월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출소하더니 각종 단체 대표 직함을 연이어 달면서 유력인사 행세를 했다. 이런 '신분 세탁' 과정은 교도소에서 만난 언론인 출신 정치권 인사 A씨 도움이 있어 가능했다. A씨는 후견인을 자처했지만 김씨는 A씨를 상대로도 십수억 원을 떼먹는 등 배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언론 부회장으로 신분세탁 시작

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다방면의 인맥을 과시하며 유력 정치인 친형 등을 상대로 100억 원대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있었던 데는 공신력 있는 단체의 주요 임원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후광 효과가 적지 않았다. 김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것처럼 꾸민 수산업체 대표 외에도 인터넷 언론사 부회장,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 상임위원, 농구 관련 단체 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김씨는 자신의 정체를 가릴 직함을 늘려가는 과정에서 A씨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A씨가 2018년 3월부터 발행인·편집인을 맡았던 인터넷 언론사에서 부회장 직함을 얻었다. 해당 언론사 현직 대표는 "당시 회장이던 A씨가 지인인 김씨에게 부회장 명함을 줬다"며 "김씨가 회사와 관련된 활동을 한 적은 없고, A씨도 올해 초 회사 운영에서 손을 뗐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후 인터넷신문윤리위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다. 인터넷 언론사 부회장이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김씨는 평소 언론 등에 해당 위원회가 공공기관인 한국언론진흥재단 관련 단체인 것처럼 소개했다. 하지만 언론재단 관계자는 "해당 단체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재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2020년 5월 농구 관련 단체 회장 자리에도 올랐다. A씨와의 인연으로 또 다른 야당 유력 정치인이 입김을 넣어준 덕이다. A씨 측 관계자는 "대구·경북 지역 중진 의원이 추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취임식에는 김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입건된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엄성섭 TV조선 앵커, 유명 연예인들이 참석했고 김무성·정봉주 전 의원이 축하 영상을 보냈다.

"정치권 감방 동기가 줄 대줬다더라"

김씨와 A씨는 2017년 대구교도소에 함께 수감되면서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2016년 11월 대구지법에서 사기죄로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고, A씨는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준비하다가 2017년 4월 같은 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0년 넘게 언론사 기자로 일했던 A씨는 과거 김무성 전 의원 선거 캠프에서 특보를 맡았던 인물로 알려졌다.

김씨 주변에서도 그의 변신이 수감과 관련 있다고 증언한다. 김씨가 세운 수산회사에서 일했던 B씨는 "김씨가 평소 감옥에서 A씨를 만난 이후부터 정계 인사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김씨의 포항 본가 근처에서 냉동창고를 운영하는 수산물 판매업자 C씨는 "출소 직후엔 갈 데가 없어 슬리퍼 차림으로 담배꽁초를 주워 피던 사람(김씨)이 몇 개월 만에 회장님으로 바뀌어 돌아왔다"며 "감옥에서 만난 정치권 사람이 줄을 대줬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씨는 출소 이후인 2018년 6월부터 오징어 매매 사업 투자를 미끼로 돈을 모아 정치권과 언론계, 검찰·경찰 등에 과시하듯 쓴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치인은 "2019년인가 친분이 있던 기자가 갑자기 보자고 해서 강남 모처로 갔다가 김씨를 만났다"며 "참석자 대부분은 유력 일간지 기자였고 김씨를 엄청난 재벌이라고 소개했다"고 말했다. C씨는 "(김씨가) 2018년 이후에는 고향에 잘 나타나지 않았고, 가끔 연락해 대게나 백고동을 선물용으로 여기저기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100억 원대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됐는데, 피해자 중엔 A씨와 인연이 깊은 김 전 의원의 친형도 포함됐다.

본보는 A씨에게 김씨와의 관계를 묻기 위해 수차례 문자와 전화로 연락을 취했지만, A씨는 "취재에 응할 수 없어 죄송하다"며 답변을 거절했다. 경찰은 "A씨가 이번 사건과 관계된 인물은 맞지만 수사 대상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정원 기자
포항= 김정혜 기자
포항= 오지혜 기자
원다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