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선박 자율운항' 핵심은 파도에 굴하지 않는 '눈' 

입력
2021.07.0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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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선박의 완전 자율운항 시대 
자율주행의 눈은 레이더·라이더·카메라 
출렁이는 바다에서도 어라운드 뷰로 사고 위험 줄여

바야흐로 자율주행의 시대다. 자율주행을 생각하면 자동차가 먼저 떠오른다. 세계적인 전기차 업체 테슬라와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조만간 완전 자율주행차를 출시하겠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아직 완벽한 자율주행 차량은 나오지 않았지만, 지구를 거미줄처럼 뒤덮은 인터넷망과 결합해 운전자 개입 없이 100% 시스템만으로 움직이는 자율주행차의 등장은 이제 시간문제다.

육지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이 자동차라면 바다에는 배가 있다. 자동차의 자율주행에 해당하는 선박의 완전 자율운항은 곧 상용화가 기대되는 자동차와 달리 먼 미래처럼 느껴진다. 바다는 육지의 도로처럼 길이 뚜렷한 것도 아니고 이정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강한 파도와 바람은 바닷길의 위험성과 불확실성을 더욱 높인다.

하지만 자율주행 자동차에 탑재된 오토파일럿(자율주행) 기능은 선박에서 먼저 사용됐다. 다만 오토파일럿 기능은 장애물이 전혀 없는 망망대해에서만 운용됐을 뿐, 실제 컨트롤은 조종사가 해야 했다.

완전 자율운항 선박 상용화 임박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는 자동차 자율주행만큼 선박 자율운항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조선업의 원류인 유럽은 물론 조선 강국인 한국, 중국, 일본이 불꽃 튀는 경쟁을 펼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 선박을 다양한 자동화 수준으로 사람의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운용될 수 있는 선박으로 정의했다. 자율운항선박 시스템은 △1단계 선원 의사결정 지원 △2단계 선원 승선 시 원격제어 △3단계 선원 미승선 시 원격제어와 기관 자동화 △4단계 완전 무인 자율운항으로 분류했다.

선박 자율운항 기술에서 앞서나간 건 유럽이다. 유럽은 2012년부터 3년간 자율운항에 집중투자했다. 2018년에는 핀란드 국영해운사 핀페리가 롤스로이스와 손잡고 3단계 수준의 자율운항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세계 조선업계 1위인 우리나라도 스마트 선박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9월 대전과 거제에 5세대 이동통신(5G)으로 잇는 자율운항선박 테스트 플랫폼을 구축하고 해상에서 300톤급 선박을 이용한 자율운항 기술을 검증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16일 경북 포항운하 일대에서 12인승 크루즈 선박을 사람 개입 없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10㎞ 운항하는데 성공했다. 출항부터 접안까지 전 과정을 완전 자율운항인 4단계 수준으로 수행했다.

자율운항의 핵심 열쇠는 어라운드 뷰


선박은 육상에서 달리는 자동차보다 변수가 많은 바다에서 운항하기 때문에 주변 상황은 물론 먼 거리까지의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 워낙 관성이 크기 때문에 프로펠러(엔진의 회전력을 추진력으로 변환하는 장치)를 멈춰도 멀리 미끄러지고, 러더(방향타)를 틀어서 방향을 바꾸려고 해도 반응이 느려 행동도 미리 취해야 한다. 해상에서 큰 사고가 발생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선박이 다양한 외부 환경 요인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해서다. 그래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운항 환경을 인식하는 시스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율주행의 '눈'으로 꼽히는 3대 장비는 레이더, 라이더, 카메라다. 레이더는 전파를 쏘아 물체와 부딪힌 뒤 되돌아오는 속도로 거리를 감지한다. 레이더는 기존 선박들도 의존하는 장비인데,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모습이 드러났다가 감춰지는 소형선박을 탐지하기는 어렵다. 이런 레이더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게 라이다다. 라이다는 빛을 쏴 선박 앞에 있는 물체의 형태와 거리를 인식한다. 라이다의 파장은 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으로 짧아 레이더가 인식하지 못한 사물까지 더 정밀하게 인식할 수 있다. 카메라는 영상을 촬영해 물체를 구분한다. 보통 소형선에는 측·후면에 4대의 카메라, 대형선에는 8대 또는 그 이상이 설치돼 실시간 영상으로 주변 환경을 인지할 수 있다.

'어라운드 뷰(around view) 시스템'은 이런 장비들이 수집한 정보를 AI로 종합해 마치 상공에서 보는 듯한 영상을 제공한다. 먼저 선박의 형상을 분석한 뒤 설치한 카메라들이 음영구역 없이 선박 주변의 모든 영상을 촬영한다. 이렇게 얻은 영상은 왜곡률을 적용해 실시간으로 평면화된다.

이동물체의 속도와 방향, 중력, 가속도를 측정하는 관성측정장치(IMU)의 데이터와 라이다를 이용해서는 수면의 위치를 파악한다. 선박이 물에 닿는 부분(수선면)에 평면화한 영상들을 투영해 결합한 뒤 보정하면 실시간으로 선박 주변 360도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자동차보다 수준 높은 기술 요구

어라운드 뷰 시스템은 자동차의 자율주행에도 적용된다. 하지만 자동차는 지면에 딱 붙어 있는데 반해 선박은 파도나 바람에 의해 크게 흔들리기 때문에 이에 따른 카메라 영상의 실시간 보정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길이가 300~400m에 달하는 대형선박은 네트워크 케이블도 매우 길어져 다수의 카메라 영상을 실시간으로 수집해 처리하려면 높은 수준의 기술이 요구된다. 또한 해외로 나가는 외항선은 차량과 달리 한 번 출항 시 최소 1주일에서 길게는 3주일 이상 운항하기 때문에 강건한 하드웨어도 필수적이다.

이 밖에 선박의 안정적인 자율운항을 위해 자율운항시스템,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 육상 관제센터에서 선박을 원격으로 제어하는 기술(IMIT) 등이 필요하다. 이런 기술들에도 어라운드 뷰 시스템이 활용된다.

자율운항시스템은 자율운항의 최적 항로를 찾고 출발지와 목적지에서 자동으로 이·접안할 수 있는 기술이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도로 사정이나 날씨 등을 수시로 체크해 최적의 경로를 찾고 주행과 주차까지 정확히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AIS는 선박의 운항정보 등을 주변 선박과 육상에 전달하는 장치로, 연안 해역의 선박모니터링에 활용된다. IMIT는 자체적으로 성능을 상시 모니터링하면서 고장을 진단하고 장애 발생 시 원격지원을 받는 기능을 한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자율운항 선박 세계 시장 규모는 2016년 56억 달러에서 오는 2025년 155억 달러까지 커질 전망이다. 이에 맞춰 해운강국인 우리나라 기업들도 자율운항 기술을 더욱 끌어올려 세계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현대중공업은 이르면 올해 하반기 국내 선사와 함께 세계 최초의 자율운항 대형상선의 대양 횡단을 시도한다. 삼성중공업은 AI 기술 및 초고속 통신기술을 기반으로 내년 자율운항 선박 상용화를 목표로 잡았다.

김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