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경찰·언론인에 금품' 수산업자…수산업도 '가짜였다'

입력
2021.06.30 17:30
오징어 투자 빙자 116억 챙겼지만
어선·냉동창고·장비 구입한 적 없어
수산업체 주소는 어릴 적 살던 빈 집
5년 전 구룡포 고향서도 사기...복역
뒤늦게 사기 알게 된 피해자 '부르르'

현직 부장검사 등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수산업자 A(43)씨가 실제론 수산업을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오징어 매매 사업에 투자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았지만, 수산업체로 소개한 회사 주소는 그가 어릴 적 살았던 경북 포항 구룡포읍 빈 집으로 드러났다.

3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올 2월 A씨의 고향인 구룡포읍 구룡포리에 수산업체 'B물산'을 찾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B물산 위치를 묻는 사람 중에는 김무성 전 의원의 친형도 있었다. 구룡포리의 한 주민은 "자신을 김무성 친형이라고 소개한 남성이 'A씨를 아느냐' '수산업체를 하는 게 맞느냐'라고 물었다"며 "'그런 회사가 없다'고 알려주자 온몸을 떨며 돌아갔다"고 말했다.

A씨가 수산업체로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온 B물산은 구룡포리에 주소만 둔 유령회사였다. 그는 자신을 수산업자로 소개했고, 주위에 오징어 매매 사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했지만, 어선이나 냉동창고 등 관련 시설은 전혀 갖추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B물산의 주소지로 지목한 건물은 어릴 적 살았던 본가였다.

구룡포리 주민들은 A씨가 어릴 적 아버지가 오징어를 말려 팔던 것을 보고 가짜 수산물 업체를 차린 뒤 사기를 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2016년 사기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당시 피해자 중에는 구룡포읍에 살던 고향 친구들도 있었다. 그는 출소 후 구룡포리 본가에 외제차를 타고 나타나 지인들에게 재력을 과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이웃은 "A씨 아버지가 집 옆 공터에 덕장을 만들어 오징어를 말려 팔았지만 아주 오래전 일"이라며 "A씨가 가끔 동네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다들 '사기꾼'이라고 상대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A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올 4월 구속기소됐다. 그는 2018년 6월부터 올 1월까지 서울과 대구 등을 오가며 투자금 명목으로 7명에게 모두 116억 원을 받아 챙겼다. A씨는 "선박 사업에 투자하면 선주가 될 수 있고, 수산물 매매 사업에 투자하면 몇 달 만에 3, 4배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며 돈을 끌어모았다. 피해자 중에는 10개월간 30여 차례에 걸쳐 86억 원을 A씨에게 건넨 이도 있다.

포항=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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