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이 철군 이후 현지 상황이 내전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은데도 '9·11 철수'를 밀어붙이고 있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한 것이다. 그러나 미 백악관은 국방부 측의 만류에도 철군 시기를 앞당길 기미를 보이며 확고한 입장을 확인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오스틴 스콧 밀러 주아프간 미군 사령관이 29일(현지시간)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군 철수 이후 내전이 가시화될 수 있다. 세계가 아프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했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 관계자들과 정적 지도자들의 통합이 중요하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매우 힘든 시기가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밀러 사령관의 발언은 아프간 철군에 대한 백악관과 국방부의 긴장관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4월 아프간 철수를 발표한 이후부터 미군 주둔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아직 탈레반의 세력이 남아있는 데다 현 아프간 정부의 군사력이나 지지율도 떨어져 미군이 떠난다면 다시 탈레반이 아프간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NYT는 “밀러 사령관의 발언을 통해 백악관과 펜타곤의 의견차를 알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지의 치안 상황은 밀러 사령관과 국방부 관계자들의 걱정대로 미군 철수가 발표된 이후 악화하고 있다. 처음에는 탈레반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테러 사건이 발생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탈레반은 더 많은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탈레반은 아프간 370개 지구 중 140개 이상을 장악했고, 170개 지구에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실제로 아프간 현지 매체들은 최근 48시간 동안 탈레반이 수도 카불의 북쪽과 남쪽에 있는 도시를 장악했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의 세력이 수도까지 근접한 셈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에 개의치 않고 철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미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예정일보다 이른 다음 달 4일 미국 독립기념일까지 철수가 완료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WP 역시 “바이든이 철군 시기를 늦출 것이라는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의 일원으로 아프간에 군대를 파견했던 독일도 7월 초까지 철수할 계획이었지만, 30일 예정보다 이르게 모든 군대의 일원이 아프간을 떠났다. 이에 외신이 제기한 미군 조기 철수설에도 점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