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엔터테인먼트 회사 디즈니가 '백설공주(Snow White)' 실사 영화의 주인공으로 콜롬비아계 배우를 발탁해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CNN 등 미국 언론은 22일(현지시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신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서 주인공으로 낙점된 신예 레이첼 제글러가 '백설공주'도 맡게 됐다고 보도했다.
백설공주는 그림형제의 동화로 착하고 예쁜 공주가 계모의 살해 위협과 핍박을 이겨내고 왕자와 결혼한다는 내용의 동화다. 백설공주는 1983년 디즈니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디즈니가 백설공주에 라틴계 배우를 캐스팅한다고 알려지면서 팬들 사이에선 엇갈린 반응이 나왔다. 디즈니 세계관 속 인종 다양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눈처럼 하얀 피부'가 특징인 '백설공주'와 맞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제글러는 아버지가 폴란드 계통, 어머니가 콜롬비아인인 콜롬비아계 미국인으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선 푸에르토리코 이주자인 마리아 역을 맡기도 했다.
제작진들은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 이어 '백설공주' 연출을 맡은 마크 웹 감독은 성명서에서 "레이첼의 뛰어난 보컬 능력과 에너지, 낙천적인 성격이 디즈니 고전 애니메이션의 즐거움을 재발견하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백설공주 역을 위해 수많은 미팅과 오디션을 진행했으나 그 중 제글러가 출연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초반 푸티지 영상이 가장 감명 깊었다는 후문이다.
백설공주의 음악은 '라라랜드', '위대한 쇼맨'의 작곡가인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이 담당했으며 2022년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디즈니의 캐스팅 파격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7월 디즈니는 '인어공주' 주인공 역에 흑인 가수 핼리 베일리를 낙점했고, 지난해 9월 '피터팬과 웬디'의 팅커벨 역엔 흑인 배우 야라 샤히디를 캐스팅했다.
실사 영화 캐스팅뿐만 아니라 옛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도 정치적 올바름을 더했다. 지난해 10월 디즈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방영되는 '아기 코끼리 덤보'(1941), '피터팬'(1953), '아리스토캣'(1970) 등 영화 세 편에 12초짜리 인종차별 경고문을 집어 넣었다.
경고문에는 "작품에 나온 스테레오타입은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립니다"라고 쓰였다.
디즈니에 따르면 피터팬에선 인디언 원주민을 '레드스킨'으로 비하하고, 인디언의 머리 장식 품을 묘사해 원주민의 문화를 조롱한다.
덤보에서는 얼굴이 검고 누더기를 걸친 백인이 흑인 노예를 흉내 낸다. 또 덤보를 도와주는 까마귀의 이름은 공공기관에서 백인과 흑인을 분리하도록 규정한 법인 '짐 크로'다.
아리스토캣은 아시아인을 묘사하면서 눈꼬리가 올라가고 앞니가 튀어나온 고양이가 서투른 영어를 구사하며 젓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그렸는데, 아시아인을 인종차별적으로 표현했다고 지적받았다.
디즈니는 "작품을 아예 삭제하기보다는 그 폐해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어 더 나은 미래를 함께하기 위한 것"이라고 경고문 삽입 이유를 밝혔다.
3월엔 아예 7세 미만 아이들이 디즈니플러스에서 피터팬을 볼 수 없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디즈니의 이런 파격 행보를 두고 많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제글러의 캐스팅 소식이 알려지자 백인 우월주의자, 네오나치주의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디즈니가 백설공주를 흑인 소녀(black girl)로 만들었다", "백인 여성 캐릭터를 흑인에게 맡기는 것은 백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혐오 발언이 이어지자 제글러는 자신의 트위터에 "나는 백설공주다. 그러나 배역을 위해 얼굴을 하얗게 만들지 않겠다"고 썼다.
한편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지에선 인종차별을 떠나 이번 백설공주 캐스팅이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누리꾼들은 "실사화고 이름이 '백설'인데 왜 원작 캐릭터를 부정하나", "차라리 동양인을 캐스팅했으면 좋았을 것", "인종차별의 차원이 아니라 세계관 분열"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부 누리꾼은 디즈니의 결정을 옹호했다. 인종적 다양성에 각별히 신경써온 디즈니의 행보에 무게가 실렸으며, 작품을 폭넓게 재해석할 계기가 생겼다는 평가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백설을) 마음이 하얗고 순수하다는 식으로 (작품을) 재해석할 수도 있다"며 피부가 어두운 공주는 없다는 아이들의 편견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썼다. 또 다른 누리꾼은 "원작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오히려 시대착오적"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