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고문을 받고 7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고(故) 박남선씨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고 진심 어린 사과의 뜻을 전했다. 박씨는 이날 무죄로 43년 만에 누명을 벗게 됐다.
서울고법 형사12-3부(부장 김형진 최봉희 진현민)는 29일 박씨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혐의 전부에 대해 무죄·면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불법 체포돼 수사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취지의 피고인 진술은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로 임의성 없는 진술을 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박씨는 1965년 서해 강화도 인근 함박도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중 북한에 의해 납북될 위기에 처했으나, 현장에서 가까스로 도주하면서 납북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13년이 지난 1978년 수사기관은 그를 간첩 혐의로 불법 연행했다.
박씨는 당시 경기도 경찰국 수사관이었던 ‘고문 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갖은 고문을 받으면서 결국 허위 자백을 하게 됐다. 며칠간 잠을 재우지 않으면서 물고문과 구타를 계속하자, 북한과 내통해 군사기밀을 유출하고 공작금을 받았다고 거짓 실토를 한 것이다.
박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대법원에서 징역 7년이 확정돼 1985년 1월까지 복역했다. 북한에 있는 삼촌이 왔다갔다는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씨의 6촌 동생인 박남훈씨도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박남선씨는 복역을 마친 뒤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2005년 패혈증으로 숨을 거뒀다.
재심을 청구했던 박씨의 아들 박영래씨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아버지가 재심청구를 말씀하셨지만 무죄를 받기 힘들 거라 생각해 차일피일 미뤘다"며 "지금도 그 점이 너무 죄송하고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이어 “당사자들한테 사과를 못 받은 게 아쉽지만, 재판부가 대신해 사과해주신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향후 국가를 상대로 불법 구금·고문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