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로 쓰러진 내연녀를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국토연구원 전 부원장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제때 구호조처를 하지 않은 것은 인정되지만, 내연녀 사망과의 인과관계는 증명되지 않았다는 취지다.
대전지법 형사11부(부장 박헌행)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국토연 전 부원장 A(60)씨에게 24일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8월 당시 자신이 거주하는 세종시 한 아파트에서 평소 내연 관계를 유지해 온 직장 후배 B씨가 의식을 잃었는데도, 3시간 가까이 지난 뒤 밖으로 데리고 나오고, 재차 4시간 넘게 차량에 태운 채 방치했다가 뒤늦게 병원에 데려갔다. 하지만 이미 B씨는 숨진 상태였다. 병원과 A씨 거주지 간 거리는 차량으로 10분 정도 떨어져 있었다.
A씨는 사건 직후 부원장 직을 그만뒀으며,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충북 청주의 한 모텔에서 투신해 크게 다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당시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1년여간 수사한 끝에 A씨가 위급상황에서 B씨에게 마땅히 해야 할 구호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며 지난해 말 기소했다. B씨가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뒤 3시간 가까이 집 안에 놔뒀다가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온 것도 모자라 차 안에 4시간 가량 더 방치한 만큼 살인의 죄책이 있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하지만 A씨가 구조 조처를 제때 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B씨 사망과의 인과관계는 인정할 수 없다며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B씨가 집 안에서 구토한 뒤 의식을 잃고 코를 골았다는 A씨의 진술로 볼 때 B씨가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상태가 위중하다는 판단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병원에 곧바로 데려갔다면 살았을 것이란 예견은 하기 어렵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더불어 "B씨가 쓰러진 지 3시간 후에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왔을 때는 이미 치명적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의식을 잃은 B씨에 대해 구호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이 행위와 B씨 사망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한 만큼 피고인은 무죄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