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해군사관학교, 생도들 연애 막지 마라"

입력
2021.06.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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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연애 금지 규정' 위반 징계받은 47명 진정
"행복추구권·사생활 침해" 징계취소·규정개정 권고

해군사관학교가 생도간 연애를 전면 금지하고 이를 징계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24일 인권위는 지난달 해군사관학교 생도 A씨가 이성교제 건으로 징계 받은 생도 피해자 47명을 대표해 제기한 진정과 관련해 "해당 징계 처분을 모두 취소하고 관련 규정을 개정하라"고 해군사관학교장에게 권고했다. 인권위는 "학교 측 규정은 생도들의 행복추구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결정 이유를 밝혔다.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A씨를 포함한 해군사관생도 47명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1학년 이성교제 금지 규정 위반' 건으로 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들은 진정서에 "징계 결정 이후 매주 반성문을 제출해야 했고, 매일 지정시간에 전투복 착용 상태로 집합해 단체자습을 해야 했다"며 "마치 범죄자로 낙인 찍힌 기분이었다"고 밝혔다. 인권위에 출석한 자리에선 "사람 마음을 법으로 막을 수 없는 것인데, 성인이 이성교제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진술했다.

해군사관학교는 여생도가 최초 입학한 1999년부터 1학년 생도가 동급 생도 혹은 선배 생도와 연애하지 못하도록 이성교제 제한 규정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 측은 △1학년 생도의 조기 적응 △강요에 의한 이성교제로부터 1학년 생도 보호 △상급 생도의 1학년 지도·평가 시 공정성 확보 등을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애틋한 감정은 어떤 제도나 법이 관여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며 1학년 이성교제 금지 규정 자체가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규정에 근거한 징계 또한 피해자들의 행복추구권(자기운명결정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봤다. 학교 측이 규정 이유로 든 ‘1학년 생도 보호’와 관련해서도 인권위는 "이미 강압에 의한 이성교제를 엄격히 금지하는 규정이 예규에 존재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권위는 해군사관학교 규정상 이성교제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인권위는 사건 조사 과정에서 학교 측 징계 의결 후에도 서로 사귀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항변한 남녀 생도 2명의 사례를 들며 "기본권을 제한하는 규정인 만큼 금지되는 행위와 허용되는 행위를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어야 함에도,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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