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의 순간마다 '쭈뼛 민주당'... 경선 연기 또 결론 못 냈다

입력
2021.06.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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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대선 경선 연기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또 한 번 미뤘다. 22일 의원총회에서 경선 연기 여부를 두고 둘로 쪼개진 이재명계와 비(非)이재명계 의원들이 정면충돌하면서다. 지도부는 당초 의총에서 의견을 수렴한 뒤 최고위원회에서 결정을 내릴 계획이었으나, 최고위에서조차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결국 매듭을 짓지 못했다. 양측의 세 대결에 최종 결단을 미루는 송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있다.

'캠프 대리전'으로 치러진 3시간 의총

경선 연기를 주장하는 의원 66명의 요구로 소집된 의총은 사실상 '캠프 대리전'으로 진행됐다.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을 지원하는 의원들은 집중적으로 경선 연기론을 설파했고, 이재명 경기지사를 지지하는 의원들도 뒤질세라 맞불 주장을 폈다.

소속 의원 174명 중 130여 명이 참석한 의총은 오전 10시30분부터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시작부터 신경전은 팽팽했다. 이 전 대표 측 설훈 의원이 공개 의총을 요구하면서 의총 공개 여부를 두고 맞섰다. 공방 끝에 윤호중 원내대표는 비공개를 결정했다.

경선 연기 찬성파인 김종민·홍기원 의원과 반대파 김병욱·김남국 의원의 찬반 토론에 이어 당초 자유발언은 9명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이재명계와 비이재명계 간 세대결이 격화하면서 발언자는 20명으로 늘었다. 경선 연기 찬성파들이 잇따라 발언에 나서자 위기감을 느낀 이 지사 측 조정식·안민석 의원 등이 추가 발언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찬반 토론자 4명을 제외한 자유발언자 20명 중 연기 찬성파는 12명, 반대파는 8명이었다.

토론 종료 후 송 대표는 '원칙대로 경선을 치러야 한다'는 취지의 마무리 발언을 했다고 복수의 참석자가 전했다. 송 대표는 "지난해 8월 경선 관련 특별당규를 만들 때 대선 주자들에게 일일이 의견을 물었고, '대선 180일 전까지 후보 선출'이 적당하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여기엔 이낙연 전 대표도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경선 주자 중 3명(이 지사·박용진 의원·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연기를 반대하는 점도 거론했다. 그러나 이 전 대표 캠프의 오영훈 대변인은 입장문을 내고 "당시 이낙연 대표 후보자는 '지도부가 결정할 일이니 지혜를 모아달라'고만 말했다"며 송 대표 발언을 반박했다.

송 대표가 최고위에서 결정하겠다는 뜻을 비치면서, 일부 의원들은 "그럴 거면 의총을 왜 하느냐"고 반발했다. 이에 송 대표가 "그럼 당대표는 왜 뽑느냐"고 반박하면서 극도의 긴장이 흘렀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송 대표의 발언에 대해 "사실상 '연기 불가'에 쐐기를 박는 발언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최고위 최종 결론 불발... '송 대표 리더십' 도마에

송 대표는 예정대로 오후 5시 최고위를 소집했다. 송 대표 측 관계자는 "지도부가 어떤 쪽으로 결정하든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다. 더 미뤄봤자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질 것"이라며 "반발을 감수하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고위에서도 경선 연기 여부에 대한 표결은 없었다. 그러나 강병원·김영배·전혜숙 최고위원 등 '연기 찬성론'을 펴는 이들의 목소리는 강했다. 결국 최종 결정은 불발됐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비공개 최고위가 끝난 뒤 "의총 의견들을 바탕으로 지도부가 숙의한 결과, 현행 당헌의 '대선 180일 전 후보 선출'을 기본으로 해서 대선경선기획단이 선거 일정을 포함한 기획안을 오는 25일 최고위에 보고한 뒤 최종 결론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후유증을 의식한 고육책이었다. 경선 일정과 별개로 민주당은 23일 당무위원회를 열고 중앙당선관위 설치 등의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25일에는 최종 결론이 내려진다 해도 후폭풍은 만만찮아 보인다. 송 대표는 현재까지 원칙론을 강조하고 있는데, 경선 연기론자들은 이날 의총에서 '연기 찬성' 의견이 다수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경선 보이콧'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파국을 우려한 지도부의 최종 결정이 더 미뤄진다면 혼란을 방치하는 지도부의 책임론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공정한 경선 관리와 경선 흥행을 책임져야 하는 송 대표로서는 경선 시작 전부터 위기를 맞은 셈이다.


이서희 기자
강진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