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건물 붕괴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을 둘러싸고 부정 청탁이 만연했던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감리자는 물론 각종 공사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공무원과 재개발정비사업조합 관계자 등이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돼 경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22일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광주 동구 소속 공무원(7급) A씨를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2월 말 B씨로부터 건축사 차모(59)씨를 학동 4구역 재개발정비사업 일반 건축물 해체공사감리자로 지정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차씨를 해체공사감리자로 지정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행 건축물관리법은 허가권자인 주무 감독청(동구)이 관리자(조합)의 해체계획서를 허가하면서 감리자를 지정하도록 돼 있지만 A씨는 지난 5월 해체허가서를 발급하기 전에 이미 B씨로부터 청탁을 받고 차씨를 감리자로 지정했다. 경찰은 감리 선정 과정에서 금품이 오갔는지와 함께 A씨 윗선도 개입됐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경찰은 또 학동 4구역 재개발정비사업과 관련한 철거 등 각종 공사 업체 선정 과정에도 부정 청탁 등 비리가 있었던 정황을 잡고 관련자들을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재개발사업을 놓고 각종 이권에 개입한 의혹을 받다가 미국으로 도피한 조직폭력배 출신인 전 5·18구속부상자회장 문모(60)씨를 비롯해 여러 명이 업체 선정에 개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재개발정비사업조합 측이 공사비 105억 원짜리 정비 기반 시설 공사를 발주하면서 업체와 짜고 공사 단가를 부풀린 것으로 보고 시공업체인 H건설과 조합 관계자들을 상대로 공사비 책정의 적정성 여부 등도 들여다보고 있다. 경찰은 이와 별도로 조합 측이 지역 정관계 인사 등에게 재개발 구역 내 지분 쪼개기를 통해 아파트 분양권을 넘겼다는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지분 쪼개기는 단독·다가구주택을 다세대주택으로 전환해 조합원 수를 늘리는 것인데, 경찰은 조합 측이 이 과정에서 분양권을 확보해 각종 인·허가 과정에 로비용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캐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지분 쪼개기는 부동산 개발업자들 입장에선 토지를 싸게 산 뒤 비싸게 쪼개 팔아 막대한 이득을 올릴 수 있고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아파트 입주·분양권을 확보한 뒤 몇 배의 시세 차익을 올릴 수 있다"며 "부동산 투기와 관련 유관 기관의 협조를 얻어 부적격 세대에게 분양권이 넘어갔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