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좌석 좀 펴. 나 앉게."
귀를 의심했다. 휠체어 탄 딸과 저상버스를 타고 달리는 차에서 좌석을 접어 겨우 휠체어를 자리에 집어넣었을 때였다. 한 어르신이 딸 어깨를 툭툭 치며 하는 말이었다. 딸은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 접혀 있는 좌석을 펴서 본인이 앉아야겠다는 거다. 딸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또박또박 말했다. “휠체어가 통로로 나오면 모두가 위험해. 저분은 다른 자리에 앉으면 돼.” 다행히도 앞쪽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다른 승객이 그에게 자리를 내줬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한 지인은 얼마 전 서울지하철 6호선에서 휠체어석에 떡하니 세워진 자전거를 보고 기가 막혔다. ‘휠체어 우선, 자전거 적치 금지’ 표시가 붙어 있었다. 부피가 큰 휠체어로 본의아니게 사람들의 길을 막게 된 지인은 다른 승객들에게 내내 “죄송합니다”라고 해야 했다. 한참을 기다려서 자전거 주인이 나타났다. 심지어 옆칸에서. 그는 학생에게 사과도 없이 자전거를 끌고 가버렸다.
아파트 장애인주차구역을 둘러싼 장애인 지인들의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장애인주차구역에 비장애인 이웃들이 차를 댄다는 거다. 신고하라고 무심하게 말하기도 어렵다. 상당수의 장애인들은 “보복당할까 봐 겁난다”고 한다. 용기 내어 불법주차신고를 하면 “이웃끼리 이러면 되냐”며 블랙박스까지 뒤져 위협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한 아파트에서는 ‘장애인주차구역 과태료는 관리사무소가 대납하겠다’는 황당한 공고를 내걸었다. (참고로 이건 횡령이다)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갖가지 법제도는 보통 장애인들이 참다 참다 싸워서 생긴다. 그나마 최소한의 기준점만 제시한다. ‘특별교통수단’이자 1, 2시간 기다리기 일쑤인 장애인콜택시, 서울에서 절반 비중을 겨우 넘긴 저상버스 등은 최소한도의 이동권만 보장하는 셈이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내 지인은 한국만 오면 우울해진다. 그의 휠체어로는 조금이라도 오래된 건물에 들어갈 수가 없고, 휠체어 접근 가능 식당도, 화장실도 너무 적으며 건널목은 경사가 너무 심해 외출하면 삶의 질이 떨어진단다.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가 있는 곳은 현재 법으로는 300㎡(약 90평) 이상의 매장이다. 100곳 중 1곳에 불과하다.
자폐인 인권에 대한 약 100년간의 미국 역사를 다룬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를 보면 90대 도널드 트리플렛이란 인물이 나온다. 타인과의 대화가 제한적인 자폐인이 어떻게 90세까지, 부모 사망 후에도 시설 아닌 마을에서 평생 살 수 있었을까? 미시시피 한 마을 주민 모두가 그를 이해하고 도왔다. 특수교육이 없던 시절, 학교에서는 그에게 맞는 교육을 제공했다. 괴롭힘을 당할 때는 친구들이 도널드를 보호했다. 자폐 특성에 맞는 직업을 가졌다.
장애인 권리는 장애인들이 싸워서 법으로 쟁취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 최소 권리를 위한 법제도를 만들기 전 비장애인 그 누구라도 손을 보탤 수 있다. 휠체어 우선 표시가 붙어 있는 곳에는 자전거든 자동차든 대지 않기. 지하철에서 중얼중얼거리는 자폐 청년에게 눈살 찌푸리지 않기.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어 시각장애인들이 다치기 쉬운 킥보드 세워주기. 장애인주차구역 불법주차를 발견하면 장애인 이웃을 대신해 신고하기. 단골 레스토랑에 경사로 놔 달라고 부탁하기. 매장 앞에 작은 경사로 놓기. 이런 일을 하는 당신은 착한 게 아니다. 당신은 소수자의 권리, 우리 모두의 권리를 위해 연대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