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이 워이" "에이 에이" "오..."
저 멀리 상공에 희미하게 두 점이 나타난다. 이를 확인한 진행요원이 호루라기를 분다. 매트 위에서 숨 죽이던 두 사람이 득달같이 하늘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한 손을 높이 쳐들고 흔들어댄다. 각자 손에 들린 비둘기 한 마리가 날개를 파닥거린다. 점은 순식간에 비둘기로 변하는가 싶더니 매트 안으로 돌진한다. 상공의 비둘기가 어떻게 착지하느냐에 따라 환호와 탄식이 엇갈린다.
인도네시아인들, 특히 자바섬 주민들이 즐기는 '비둘기 고공 구멍 대회(Lomba merpati tinggi kolong·롬바 머르파티 팅기 콜롱)' 풍경이다. 명칭은 비둘기(merpati) 대회(lomba) 규칙을 그대로 옮겼다. 토일 주말마다 각지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열린다. 마을 단위 대회부터 총상금이 2억5,000만 루피아(약 2,000만 원)에 달하는 전국 규모 대회도 있다. 경기는 어떻게 할까, 왜 그리 열광할까, 지인 덕분에 소규모 대회를 직접 찾아갔다.
일요일 오전 8시 40분, 수도 자카르타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서부자바주(州) 보고르의 구눙푸트리 허허벌판에 생소한 구조물이 우뚝 서 있다. 널찍한 흰색 매트 사방에 기다란 기둥을 세웠으나 천장은 뻥 뚫려 있다. 대신 인도네시아 국기를 떠올리는 적색과 흰색 천을 연달아 기둥에 잇댄 줄이 높이 9m 지점에, 길이 7m 정사각형 모양의 공간을 만들었다. 매트에도 같은 면적의 공간을 빨간 줄로 구별해 뒀다. 비둘기 경기장이다.
오토바이에 새장을 싣고 사람들이 속속 나타났다. 슬레이트 지붕이 넓게 드리운 매점 겸 쉼터엔 이미 1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주변엔 쇠붙이나 나무로 만든 비둘기 집이 늘어섰다. 대략 헤아려도 300마리가 넘는다. 새장 바깥에 앉아 물을 마시는 녀석, 뒤뚱뒤뚱 주인 주위를 맴도는 녀석, 새장 아래층에 있는 제 짝을 부리로 쪼는 녀석 등 제각각 망중한을 즐겼다. 낯선 이가 다가가도 멀찍이 달아나거나 날아가지 않는 게 신기했다. 의젓해 보일 정도였다.
안내 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저마다 비둘기를 두 마리씩 꺼내 매트 위로 올라갔다. 부부 한 쌍이다. 수컷을 훌쩍 날리면 다시 암컷에게로 돌아왔다. 정식 경기를 앞두고 마지막 훈련에 나선 것이다. 이후 참가비를 지불한 이들이 자신들의 비둘기 이름을 등록하자 진행요원이 순서대로 수컷 비둘기만 빈 새장에 실었다. 새장을 등에 짊어진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졌다. 참가자들은 매트 뒤 간이의자에 대기했다.
호명된 두 사람이 각자 암컷 비둘기를 등 뒤로 들고 매트 위에 섰다. 무전기로 누군가와 수신하는 진행요원이 두 사람 뒤에서 대략 방향을 알려주고 하늘을 응시했다. 오토바이에 실려갔던 수컷 비둘기가 얼마 뒤 하늘에 두 점처럼 나타나자 진행요원이 호루라기를 불고 시간을 쟀다. 10여 초도 안 되는 사이 수컷 비둘기가 주인에게(사실은 제 짝에게) 돌아왔다. 정확한 판독을 위해 사각형 매트 삼면에 카메라가 배치됐다.
경기 규칙은 간단하다. 1㎞ 떨어진 거리에서 수컷 비둘기를 날린다. 경기장에 오른 참가자가 암컷 쪽으로 날아온 수컷을 유인한다. 호루라기를 분 지 3분 안에 수컷이 높이 있는(tinggi) 정사각형 구멍(kolong)을 통과해 경기장 안으로 착지하면 성공이다. 얼마나 빨리 도착하는지도 따진다. 성공 확률은 절반도 안 돼, 열에 예닐곱 마리는 구멍을 무시하고 들어오거나 구멍을 통과하더라도 경기장 바깥으로 지나쳐 실격 처리됐다. 한 번 성공했다고 다음에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다. 구멍을 정확히 통과해 안착하는 순간, 그 짜릿한 확률 싸움을 즐기는 것이다. 이날 가장 많이 성공한 비둘기 주인에게 주어진 1등 상금은 800만 루피아(약 64만 원)였다.
인도네시아의 비둘기 대회는 100년 전 동부자바주(州) 마두라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멀리 보냈다가 돌아오는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는 식이었다. 지금처럼 비둘기가 허공의 일정한 구멍을 통과하도록 설계한 경기장과 규칙은 1980년대 중부자바주 브르브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자바섬 전역으로 전파되면서 규칙이 세분화했다. 예컨대 자바 북부에선 매트 위에 착지하는 '자유(bebas) 구멍 대회'가, 남부에선 그보다 작은 탁자에 착지해야 하는 '탁자(meja) 구멍 대회'가 주로 열린다. 전국 대회에는 1,500~2,000명이 참가한다. 상금 액수는 참가비가 높을수록 올라가는 구조다. 우승 상금이 자동차 한 대 가격인 대회도 있다.
비둘기 고공 구멍 대회가 인기 여가 활동으로 자리잡자 비둘기 몸값도 치솟았다. 최고 거래가는 2019년 10억 루피아(약 8,000만 원)에 팔린 '자야바야(자바 동쪽 고대 왕 이름)'라는 비둘기가 기록했다. 자야바야는 2018년 '탁자 구멍 대회' 전국 챔피언이었다. 보고르 대회 주최자 부디(40)씨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호가가 15억 루피아(약 1억2,000만 원)에 이르는 비둘기도 꽤 있다"고 귀띔했다. 작은 대회에 출전하는 비둘기는 보통 50만~300만 루피아에 거래된다. 대회를 참관하며 비둘기를 스카우트하는 전문가도 존재한다.
비둘기 주인들은 대개 직업을 가지고 있다. 깔끔한 날개와 맑은 눈동자, 비행 속도가 비둘기 간택 조건이다. 훈련은 비둘기 성향에 따라 인내심이 요구되는데 보통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10m부터 시작해 100m, 200m식으로 틈날 때마다 차츰 훈련 거리를 늘려간다. 목욕 및 식사 시간, 음식 섭취량 등도 관리한다. 비둘기는 한두 살 때 왕성하게 대회에 참가한 뒤 대여섯 살이 되면 은퇴한다.
공장 노동자 이완(30)씨는 "2년 전부터 취미로 마리당 100만 루피아에 산 비둘기 세 마리를 훈련시키며 비둘기 몸 상태에 따라 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둘기 30마리를 키우는 헨드릭(42)씨는 "5년 정도 됐는데 2등을 4번 했고, 상금으로 한 번에 5,500만 루피아(약 440만 원)를 탄 적도 있다"고 자랑했다. 인터뷰에 응한 비둘기 주인들은 모두 가족의 응원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반면 비둘기 훈련과 대회 참가에 몰두해 이혼 위기에 놓인 이들이 많다는 현지 보도도 있었다.
인간들 처지와 달리 비둘기 고공 구멍 대회는 금슬 좋기로 소문난 비둘기의 습성을 십분 활용한다. 비둘기는 한 짝하고만 평생 짝짓기를 하며 해로한다. 암수 교대로 알을 품고 육아도 함께 한다. 따로 떨어뜨려 놓으면 반드시 짝에게 돌아간다. 조류 중에 가장 높은 지능, 도로와 지형지물을 식별하는 항해 실력, 평균 시속 125㎞에 달하는 쾌속 능력까지 갖췄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반복적인 행위를 하는 경기에 안성맞춤인 셈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인들은 비둘기를 식구처럼 여긴다.
인도네시아의 새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새들의 지저귐이 마음을 평화롭고 차분하게 한다"는 '새 소리 경연 대회(Lomba burung berkicau·롬바 부룽 버르키짜우)'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뜸하긴 하지만 국회나 경찰서에서 대회를 주최할 정도로 대중적이다.
대회에 주로 참가하는 새는 동남아시아가 원산지인 흰허리샤마까치울새(인도네시아어로 무라이바투), 앵무과에 속하는 러브버드, 카나리아다. 새 소리의 당김이나 길이로 자웅을 겨룬다. 예컨대 새가 계속 노래하는 시간이 3~4초이면 노란색, 4~8초이면 파란색, 8초 이상이면 빨간색 막대를 주는 식으로 5분간 측정해 막대 숫자를 합산한 뒤 순위를 매긴다. 우승자는 보통 30만~50만 루피아의 상금과 트로피를 받는다.
새 관련 대회는 순기능이 강조된다. 인도네시아고공비둘기협회(PMTI)는 "비둘기 고공 구멍 대회는 현장에서 가게 문을 여는 상인, 비둘기 기수, 전문 간호사나 조련사 등 다양한 일자리를 만드는 국민 잔치"라고 홍보했다. 인도네시아 국회(DPR)는 "인도네시아 조류 보존 및 국민의 다양한 취미 활동 권장"을, 경찰은 "공공의 안녕 기원"을 새 소리 경연대회 주최 이유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