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수술에 언제까지 구형 모델을 사용해야 하나?”

입력
2021.06.21 20:10
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학술대회 토론회에서 주장

흉부외과 수술에 쓰이는 최신 치료 재료가 국내 도입이 늦어 구식 제품을 쓸 때가 많은 데다 건강보험 적용도 제대로 되지 않아 환자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가 최근 개최한 제35차 춘계 학술대회 기간 중 ‘흉부외과 필수 진료의 접근성과 선택권 제고를 위한 보험 정책’이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다.

정책토론회에서 대동맥판막을 교체해야 하는 대동맥판막 질환에 쓰이는 ‘비봉합 대동맥판막치환술(Sutureless AVRㆍSutureless Aortic Valve Replacement)’을 시행하면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진료비가 너무 많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표적인 대동맥판막 질환인 대동맥판막협착증은 대동맥판막이 좁아져 심장에서 온몸으로 혈류가 충분히 흐르지 못하는 병이다.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2년 평균 생존율이 50%에 그칠 정도로 치명적이다.

이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대동맥판막치환술(AVR·Aortic Valve Replacement), 경피적 대동맥판막치환술(TAVIㆍTranscatheter Aortic Valve Implantation), 비봉합 대동맥판막치환술(Sutureless AVRㆍSutureless Aortic Valve Replacement) 등이 쓰이고 있다.

표준 치료법인 대동맥판막치환술은 가슴을 열어 심장을 멈추고 좌심실 근처 대동맥을 절개해 문제된 판막을 떼 내고 인공 판막을 넣어 실로 꿰매는 수술이다.

이 수술을 시행하려면 심장을 멈추고 인공심폐기로 심장 대신 혈액을 순환시키면서 인공 판막과 대동맥판륜을 봉합한다. 문제는 회복 기간이 길고 합병증ㆍ사망 위험이 높아 고령 환자 등에게 수술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비봉합 대동맥판막치환술은 인공 판막을 실로 꿰매지 않고 대동맥판륜에 그냥 ‘끼워 넣는’ 방식이다. 기존 수술법보다 15~30분 정도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고령 환자, 전신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 작거나 봉합하기 어려운 대동맥판륜일 때, 재수술이나 여러 수술을 동시에 시행할 때, 최소 침습적 수술할 때 등에 유용하다.

이승현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교수는 “비봉합 대동맥판막치환술을 받으면 수술비의 50%인 700만 원 이상 부담해야 하므로 환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어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확대돼야 한다”고 했다.

또한 흉부외과 수술 등에 꼭 필요한 치료 재료가 국내에 제때 들어오지 못해 구형 제품을 써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도 지적됐다.

정재승 고려대 안암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흉부외과에서 쓰이는 치료 재료는 환자 생명과 직결돼 첨단 제품이 필요한데 사용 자체가 적고 국산화도 어려운 등 제약이 많다”고 했다.

정 교수는 “현재 체외 순환용 카테터, 인공 판막, 판막성형술용 링, 인공 판막과 인조 혈관 결합(Conduit) 등과 같은 흉부외과 치료 재료는 국내 건강보험 수가가 미국ㆍ일본 등과 비교해 30~60% 수준으로 매우 낮다”며 “흉부외과 의료 행위가 거의 필수 의료에 해당돼 보험 초기부터 수가가 낮게 책정되고, 현재까지 그 추세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로 인해 최신 기술이 반영된 신제품은 도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보험 수가가 낮게 정해지다 보니 한국은 ‘구모델 재고 처리장’이 된 상황”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또한 “흉부외과 치료 재료는 아주 적게 쓰이는 데다 차세대 제품으로 계속 대체되면서 정부가 원하는 10년 이상 걸리는 대규모 무작위 대조 시험(RCT) 결과를 내놓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실제 체외 순환용 이중 내강 캐뉼라와 동맥 필터 포함 산화기는 수많은 성인 환자 임상 데이터가 있음에도 건강보험은 어린이 환자에게만 적용되고 있다.

심폐용 라인내 혈액가스 모니터와 개심술용 튜브 및 카테터, 일회용 기관지경은 건강보험 수가를 받지 못하는 산정 불가 제품으로 분류돼 국내에 도입되지 않거나 병원에서 손해를 보면서 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경환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흉부외과 수술 결과를 좋게 해 환자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해외에서 쓰이고 최신 치료 재료를 국내에서 쓸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안상호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회장은 “2017년 4월 고어사의 소아 심장 수술용 인공 혈관 철수를 계기로 국내 흉부외과 치료를 위한 재료 공급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1982년 개발된 포사인판막 만이 아니라 이후에 출시된 3세대 포사인판막 등 새로 개발된 다양한 치료 재료가 쓰일 수 있도록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중규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장은 “복지부에서도 흉부외과 수술 환경 개선을 위해 세부 사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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