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금융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경제가 ‘신(新) 직장 풍속도’에 발목이 잡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파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미국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여전히 매출 하락과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는 모습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원인은 다름아닌 재택근무다. 방역지침 완화 이후에도 코로나19로 한번 자리잡은 재택근무가 계속되는 바람에, 글로벌 규모의 회사에 다니는 뉴욕 회사원을 핵심 고객으로 삼고 있는 서비스업이 좀처럼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근무는 아예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 노멀(새로운 표준)’으로 정착할 기세라, 뉴욕 경제도 한동안 변화의 진통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0일(현지시간) 뉴욕의 경제 회복 속도가 미국 평균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고 보도했다. 뉴욕의 일자리 수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시작된 지난해 2월부터 올해 4월까지 11.8% 감소했다. 미국 전체(4.3%)의 2.75배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달 뉴욕 실업률 역시 10.9%로, 미국 평균(5.8%)의 2배가량이었다.
뉴욕의 경제 회복 속도가 유독 더딘 이유는 계속되는 재택근무에 있다는 게 NYT의 분석이다. 방역지침 완화에도 불구, 지난달 뉴욕 직장인의 88%는 원격근무 형태로 일했다. 재택근무에 비판적 입장을 보였던 모건스탠리나 블랙스톤 등 금융업계도 과거보다 유연한 근무제도를 택하고 있다.
문제는 뉴욕 경제의 토대가 서비스업이고, 직장인들이 주요 고객이라는 점이다. 금융ㆍ무역의 중심지인 뉴욕엔 글로벌 대기업들의 본사가 위치해 있다. 자연스레 수많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업도 발달했다. 이는 대부분 중소기업의 몫인데, 뉴욕 내 50인 이하 사업장 35%가 음식점이나 건물 청소 등 서비스 분야에 속한다. 저소득층의 주요 근무지도 직장인 대상 서비스 업종이다.
재택근무 문화 확산으로 회사원들의 ‘물리적 출근’이 확 줄어든 만큼, 뉴욕 서비스업의 고전은 당연한 귀결이다. 시내 중심가인 미드타운과 맨해튼의 공실률은 현재 16.4%인데, 이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나 2001년 9.11 테러 당시보다도 높다. 가장 빈곤한 지역인 브롱스의 실업률 역시 15%에 달한다. 맨해튼의 통근자만 160만명이기 때문에, 재택근무의 파급력도 미국에서 최대인 셈이다. NYT는 “뉴욕의 번영은 직장인들(의 출근)에 달려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원격근무는 코로나19 이후에도 뉴 노멀이 될 공산이 크다. 재택근무를 경험한 노동자들이 사무실 출근을 꺼리고 있는 탓이다. 원격근무 채용 플랫폼 ‘플렉스잡’이 4월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가 팬데믹 이후에도 계속 집에서 일하길 원했다. 이중 58%는 “회사가 사무실 출근을 요구하면 직장을 옮길 것”이라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기까지 했다.
전문가들은 재택근무가 보편적 현상이 될 경우, 뉴욕의 산업 구조 변화도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뉴욕 뉴스쿨 소속 경제학자 제임스 패럿은 “맨해튼 직장인 10%만 출근하지 않아도 커피와 베이글 세트 매출 10만 개가 줄어든다”고 재택근무의 경제적 파장을 설명했다. 바바라 데넘 옥스포드이코노믹스 경제학자는 “어쨌든 뉴욕이 지금의 위기에선 회복하겠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으로 돌아갈 순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