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경기 이천 덕평물류센터를 비롯해 쿠팡이 전국에 운영 중인 물류센터는 100여 곳. 첨단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로켓배송'이 뒷받침되며 쿠팡의 지난해 매출은 13조 원에 달했다. 하지만 이런 물류혁신 이면엔 빠른 배송만 강조해온 안전불감증, 그에 따른 직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자리잡고 있음이 이번 화재로 여실히 드러났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덕평 물류센터는 지상 4층, 지하 2층에 연면적 12만7,200㎡(3만8,000여 평) 규모로 인천·대구와 함께 쿠팡의 3대 메가 물류센터로 꼽힌다. 신선식품을 제외한 일반 공산품만 취급하고 있다. 평소 일렬로 배열된 물품 진열대 선반 위에는 물건이 가득 쌓였고, 통로나 계단에도 종이박스 등 적재물이 즐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발화지점인 지하 2층도 물품 진열대 선반이 늘어선 물품 창고였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물류창고는 단위 바닥 면적당 가연성 물질의 무게인 화재 하중이 높은 편"이라며 불이 잘 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덕평 물류센터는 미로 같은 내부 구조에 컨베이어 벨트와 여러 전기 장치까지 설치돼 있어 대피도 어렵다. 물류센터 내부에는 층 한 칸의 가운데를 막아서 1.5층, 2.5층 식으로 중간층을 만들어뒀다. 물건을 더 많이 쌓기 위해 층고가 높은 한 층을 두 개로 나눈 이중 구조물이다. 사람의 이동 동선은 고려하지 않고 더 빠르게 많은 물량을 처리하겠다는 구상에만 맞춘 설계인 셈이다.
김혜진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물류센터의 모든 구조물은 사람이 아닌 물류 시스템을 중심으로 갖춰져 있다"며 "사람과 물건의 이동이 많다 보니 넘어지거나 물건이 떨어지는 일이 흔한데 작업 환경이 열악해 직원들은 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빨리빨리'만 외쳐온 쿠팡의 노동환경이 문제를 더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작업 환경상 여느 업종보다 안전수칙을 더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데도, 배송 속도전에 매몰돼 누구보다 빨리 일하는 데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쿠팡 물류센터노조에 따르면 쿠팡은 업무 효율성을 위해 평소 물류센터 직원들의 휴대폰 소지를 금지하고, 화장실 사용도 통제했다. 또 소방시설 오작동이 잦아 직원들은 평소 경고방송이 나와도 현장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일을 그대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교육 또한 허술했다. 김 위원장은 "안전교육은 아침 조회시간에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는 수준"이라며 "비상상황 대피훈련 등 사고가 터졌을 때의 대응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쿠팡에선 물류센터에 직원들이 입사하면 1시간씩 영상 강의를 하고, 고용 형태에 따라 수시로 안전교육도 진행해왔다고 해명했다. 또 지난 1년간 안전 전문 인력을 700명 고용하고, 각종 안전설비 설치 등에도 2,500억 원 이상 투자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선 쿠팡 차원의 대책에 의존하기보다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성구 한국건축기술사회 부회장은 "물류센터는 재난에 대비한 각종 안전도 심의에 제외돼 있다"며 "자체 소방시설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전문심의기구를 마련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