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죽음, 법 고치는 초석 되길" 평택항 사고 59일 만에 이선호씨 장례식

입력
2021.06.19 14:09
진상규명 위해 미뤄왔던 장례, 사고 59일 만에 진행
아버지 이재훈씨 "잘못된 법령 고치는 초석으로"
친구 "추운 안치실에 있게 해 미안... 다신 비극 없길"

경기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벽체에 깔려 숨진 청년 노동자 이선호(23)씨의 장례식이 사고 두 달 만에 시민장으로 치뤄졌다.

고(故) 이선호씨 산재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19일 오전 10시부터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이씨의 장례를 진행했다. 그동안 유족과 대책위원회는 이씨 사망을 둘러싼 진상을 밝히고자 장례를 미뤄왔다. 이날 장례식엔 사단법인 김용균 재단 김미숙 대표와 여영국 정의당 대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등 정치계와 노동계 관계자를 포함한 조문객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씨의 아버지 이재훈씨는 이날 추모사를 통해 조문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도 있었지만, 두 달 동안 이름도 알지 못하던 분들이 내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시고 약해져 가는 제 마음을 추슬러주셨다"며 "마냥 슬퍼하는 것보다 아이의 죽음이 잘못된 법령을 다시 고치는 초석이 됐다는 자부심으로 다시 살아가려 한다"고 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선호씨를 잃고 나서야 우리는 항만의 노동자들도 절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숨진 355명의 영정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겠다"고 말했다. 여영국 정의당 대표 역시 추모사에서 노동자 안전 문제를 지적하며 "사람 목숨 앗아가도 기업주는 멀쩡하고 함께 일하던 노동자만 처벌받는 세상의 비극"이라고 비판했다.

이씨의 시신이 안치돼있던 두 달 내내 빈소를 지켰던 친구들도 이날 추모사를 통해 이씨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한 친구는 "추운 것을 정말 싫어하던 선호를 차가운 안치실에서 오래 머물게 해 정말 미안하다"며 "이 땅에 더는 이런 비극이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이번 사고의 원청업체인 '동방' 평택지사 앞에서 노제를 지낸 뒤 이씨 유해를 서호추모공원에 안치할 예정이다.

이씨는 지난 4월 22일 평택항 내 개방형 컨테이너에서 화물 고정용 나무 제거 작업을 하던 중 지게차가 한쪽 벽체를 접자 그 충격으로 넘어진 반대쪽 벽체에 깔려 숨졌다. 현행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컨테이너 작업을 할 때는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지게차 동원 시 신호수를 배치해야 하지만, 당시 이씨는 즉흥적으로 작업에 투입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15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동방 관계자 등 5명을 형사 입건했고, 이중 당시 지게차 작업을 했던 A씨를 구속해 조사하고 있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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