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상원고등학교(구 대구상고) 야구부의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28년에 야구팀이 창단됐다.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9년째, 백범 김구 선생이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내무부를 맡고, 대만에서 조명하 의사가 ‘타이중 의거’를 감행한 해였다.
2023년이 상원고가 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다. 동문과 학교 모두 야구부가 전국대회에서 100주년 기념 축포를 쏘아 올리길 기대하고 있다. 100주년이 아니더라도 야구부원들의 다부진 표정에는 전통있는 야구부 멤버라는 자부심과 선배들의 화려한 족적에 누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상원고는 스타 플레이어의 산실이다. 서영무, 강태정, 정동진, 우용득, 양일환, 장효조, 김시진, 오대석, 홍승규, 이만수, 이종두, 김용국, 이강돈, 이정훈, 김성갑, 양준혁, 김승관, 이승현 등 이름만 들어도 아련한 추억에 젖게 만드는 '레전드'들이 수두룩하다. 어느 야구팬의 말마따나 배출한 선수의 이름만 거론해도 국가대표팀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이다. 선배들의 프로필을 보고 있으면 개교 100주년에 맞춘 전국 제패는 따 놓은 당상이라는 느낌까지 든다.
"상원고에서는 웬만큼을 야구를 잘하지 않고서는 (경기하는 날) VIP 지정석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프로야구 레전드급만 모두 모교를 방문해도 VIP룸에 좌석이 모두 차는 까닭이다. 젊은 스타급 선배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장면도 종종 연출된다. 다른 학교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성적도 쟁쟁하다. 상원고는 메이저 대회 우승 12회, 준우승 14회이라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올라가 보자면 그 시절에 일본 고시엔 조선 예선 대회에서 3번의 결승 진출을 이룩했고, 우승 1회, 준우승 2회라는 기록을 남겼다. 4강 진출에는 3번 성공했다. 1930년 일본 고시엔에 조선 대표로 나가서 2회전까지 진출했다. 요컨대, 역사와 실력을 겸비한 대한민국을 대표 아마야구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교 100주년 프로젝트를 위해 동문회와 학교 재단에서는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관심과 지원은 야구장 시설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고등학교 야구장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살펴보면 훌륭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느낌이 든다. 대한민국 고교야구팀이 사용하는 야구장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한 인근 주민은 "야구장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해진다"면서 "야구장에서 연습하는 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상원고 선배들이 후배들, 그리고 다음 세대의 야구 꿈나무를 위해 참 좋은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말했다.
사족을 달자면, 6월에 열린 황금사자기 결승전을 관람하려고 서울에 다녀온 한 야구인은 "전국대회를 치르는 서울 목동야구장과 자연스럽게 비교된다. (목동 구장은) 대회 때마다 그라운드 컨디션과 구장 관리가 도마에 오른다"면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 대구 상원고에 와서 야구장도 견학하고 시절 관리도 벤치마킹해야 할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투구 연습장, 타격 연습장, 웨이트 시설, 식당, 실내 연습장, 최고의 인조 잔디, 미국에서 공수해온 야구장 전용 흙, 외야 펜스, 전광판, 1·3루측 수비수와 관중석과의 공간, 포수와 포수 뒤편 관중석과의 공간, VIP 및 프레스룸 등이 고교 야구장의 수준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의 수준을 자랑한다. 동문들과 학교 관계자들의 야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저절로 느껴지는 수준이다.
상원고 출신 야구인들의 후배 사랑은 뜨겁다 못해 절절하다. 상원고 야구장에 가면 으레 상원고 출신 야구 원로 한두 명을 만날 수 있다. 5월에 열린 마산 용마고와 연습 경기 때는 우용득 전 삼성라이온즈 감독이 야구장을 찾아 후배들의 경기를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6월17일 열린 경주고와의 연습경기에는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한 바 있는 도성세 전 영남대 감독과 양일환 전 영남대 감독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야구장 관람석에는 학교장 및 야구부장의 모습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만큼 관심이 깊다.
그러나 최근 성적만 놓고 보면 상원고는 위기의 계절이다.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2000년 이후 메이저 대회 우승 2회에 그쳤다. 지역 예선에는 경북고에, 전국대회 성적에서 대구고에 밀리는 상황이다. 동향의 라이벌 팀들과의 대결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감독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감독 부임 1년 3개월째를 맞고 있는 김승관 감독은 추격팀으로서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2000년 이후 성적이 좋지 않다 보니 무엇보다 상원고를 지원하는 선수 자원이 부족해졌다. 대구고 경북고 측과 선수 스카웃 싸움에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동문과 야구 선배들도 이런 상황을 인지하고 야구부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형국이다. 현 중학교 졸업생 중에 우수 선수를 수급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김 감독은 "올해 당장의 성적을 욕심내기보다는 향후 2년 후 23년 개교 100주년을 즈음한 전국대회 제패를 목표로 플랜을 세워 차곡차곡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빠르면 가시적인 모습이 내년에는 일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사족을 달자면, 김승관 감독 또한 고교야구 스타 출신이다. 한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고교야구 스타다. 그가 고교 무대를 누빌 때는 '좌(左)승엽 우(右)승관'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졌다. 야구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고교 시절 타격 하나만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오히려 이승엽 선수보다 더 높은 평가와 장래성을 인정받았다. 그런 만큼 타자를 지망하는 후배들을 보는 눈길이 매섭다. 그는 "유능한 타자를 보면 저절로 눈길이 간다"고 고백했다. 타격으로 고교 야구를 평정한 스타 플레이어답게 작전 야구보다는 호쾌하고 시원한 타격을 지향한다. 그는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김승관 표 야구로 전국 제패의 꿈을 꼭 이루고 싶다. 상원고의 옛 명성을 되찾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감독으로서의 고충도 털어놓았다. 어느 팀 감독이든 마찬가지지만 학부형과의 관계, 대회 성적, 선수 진로 문제 등 많은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 선수나 코치 시절에는 겪어보지 못하는 일들이다. 김 감독은 "우리 세대의 고교 야구와도 또 다르다"고 했다.
"그때는 실력이 있는 선수를 우선 투입해서 경기를 잡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실력이 뒤처지면 그라운드에 설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선수들이 라인업에 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대부분의 선수가 대학 진학을 목표로 뛴다. 고교에서 프로로 직행하는 문은 좁다. 진학을 위해서는 투수의 경우 일정 이닝 이상을 던져야 하고 결과물을 남겨야 한다, 타자도 일정 타석 이상 나와서 성과를 내야 한다. 잘하는 선수든 그렇지 못한 선수이든 경기에 출전을 시킬 수밖에 없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팀성적과 선수들 개인 성적을 두루 신경써야 한다. 김 감독은 "과거의 감독들과 비교해 고민의 양이 대폭 늘었다. 고교 야구 감독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멤버가 좋거나 운이 따라줘서 전국대회 성적이 좋을 경우 경기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투수와 타자들이 필요한 만큼의 이닝을 채우기가 수월하다"면서 "결국은 다 잘하면 다 좋은데, 못 하면 정말 다 잃게 될 수도 있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상원고는 힘들다고 하소연할 시간도 없다. 100주년 기념 축포라는 거대한 숙제가 놓인 까닭이다. 김 감독은 "최고의 전력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느 팀보다 성장세가 빠른 것이 희망이다"고 밝혔다.
"선배들의 격려와 관심, 그리고 동문들과 학교의 지원, 100주년이라는 동기부여 덕분에 선수들의 하려는 의지와 열정이 대단합니다. 이 부분에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또한 양용모 코치를 중심으로 코치진들도 더 없는 열정으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김 감독은 "올가을 전국체전에는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기대감을 높이는 근거로 선수들의 의지와 성장세를 들었지만, 야구계 인사들은 김 감독 자체를 상원고의 가장 훌륭한 자산으로 손꼽는다. 이승엽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고교 야구계를 평정한 이력도 있지만 그보다 야구에 대한 애정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야구광'이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야구에 입문해 고교 시절에는 슈퍼스타의 호칭도 받았고, 프로에서는 좌절도 맛보았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게 자양이 되었다. 2군 선수들의 절박함과 간절함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스타는 스타대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선수는 또 그에 맞춰 지도하는 법을 체득한 셈이다. 그는 "부단히 노력하는 선수에게는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고, 재능 있는 선수들은 자칫 그 재능을 믿고 자만하지 않도록 경계시킨다"고 고백했다. 그가 믿는 것도 결국 선수들이다. 그는 "훌륭한 야구장이나 우수한 자질도 좋지만, 선수들의 땀방울이 조금씩 모여서 100주년 기념축포라는 거대한 봇물을 터뜨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