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4명이 죽어도...총기에 참 관대한 미국

입력
2021.06.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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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미국 정치를 접할 때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 중 하나는 그들의 총기와 관련된 태도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총기를 소유하고 소지하는 데 큰 제한을 두고 있는 데 반해서 미국은 정반대이다. 주별로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 총기를 취급하는 상점에서 1시간 이내에 총을 살 수 있다. 인구 100명당 121개의 총기가 있으며, 성인의 44%가 자신의 집에 총기를 두고 있다고 한다.

총기가 많으니 사건사고도 많다. 2021년 연초부터 5월까지 총 8,100명이 총기사고로 사망했는데, 하루 평균 54명이다. 1990년대 이후 감소했다가 2010년대 중반부터 증가세이고, 작년에 갑자기 급증했다. 가장 최근만 하더라도 애틀랜타 스파에서 8명, 인디애나폴리스 페덱스에서 8명, 콜로라도 식료품점에서 10명이 사망하는 등 심각한 상황은 한국에도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미국인들은 느긋한 편이다. 전 국민의 48% 정도만이 총기사고를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며, 총기규제를 강화하자는 주장에 대해 46%가량이나 반대한다. 특이한 점은 최근 몇 년간 총기 관련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총기규제를 원하는 여론은 오히려 15%포인트 가까이 큰 폭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이 총기규제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의 헌법이다. 수정헌법 2조에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라고 쓰여 있다. 이 조항의 후반부를 강조해서 총기는 권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현재 추진되는 여러 종류의 총기규제안들이 실제로 범죄를 줄이는 데 효과가 없다고도 주장한다. 총기로 인한 사망의 절반 이상이 정신건강상의 문제로 인한 자살이고, 규제를 새로이 도입한 주에서 범죄율이 많이 낮아졌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스포츠나 사냥용 총기 소유에 불필요한 규제만 더하게 된다고도 말한다. 한발 더 나아가 "총기를 가진 나쁜 사람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사람이 총기를 가지는 것이다"라며, 학교 총기사고에 대비해 교사에게 총기를 휴대하게 하자고까지 한다.



총기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단체도 있다. 전미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이다. 1871년 설립된 이 단체는 원래 스포츠나 사냥에 사용되는 총기를 위한 활동을 주로 했었다. 1975년 입법로비를 위한 부서를 만들면서 공화당과 연대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연방 및 주 정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약 5,500만 명의 회원이 있으며, 37~48% 정도의 연방 상하원 의원들과 대선 후보에게 꾸준히 정치자금을 기부하고 있다. 2016년 선거에는 600억 원, 2020년 선거에는 325억 원 이상 썼다.

이들에 반대하는 총기규제 진영도 총기를 모두 없애자고는 못하고 단지 수정헌법 2조를 근거로 그들의 주장을 펼친다. 조항 전반부에 "잘 규율된"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누가 "잘 규율된" 사람인지 신원조회로 판단하자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의 총기 구입에 제한을 두는 안은 85%의 국민이 찬성하고, 총기의 사적거래에도 신원조회를 도입하자는 안에는 70%의 국민이 지지한다. 다만 민주당 지지자들이 규제를 더 많이 찬성하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그 반대이다.

물론 지금까지 나온 총기규제안들은 전부 실패했다. 총기를 권리라고 생각하는 진영이 너무 막강해서이다. 지금도 민주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 2개의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상원에서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계류중이다. 미국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나라인 듯하다.

박홍민 미국 위스콘신주립대 정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