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기습 상폐는 예고편...잡코인 구조조정 이제 부터가 '본게임'

입력
2021.06.16 22:00
1면
코인빗 8개 거래 중단 기습 예고
28개는 상폐 직전 '유의종목' 지정
발표 뒤 해당 코인 80%대 폭락
당국, 불량코인 주시에 "상폐 잇따를 듯"

업비트와 코인빗 등 국내 상위권 가상화폐 거래소들이 '잡(雜)코인' 솎아내기에 속속 나서면서, 코인 구조조정 바람이 전 거래소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소 20곳에 '살생부' 격인 부실 코인 목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만큼, 조만간 중소 거래소의 잡코인 청소 움직임도 가시화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잡코인을 주로 상장해온 중소 거래소가 잡코인 털기에 나설 경우 시장에 미치는 충격 역시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 거래소는 은행의 실명 계좌 인증을 받기 위해 상위권 거래소보다 더 혹독한 잡코인 구조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투자 손실이 불가피해진 코인 투자자들의 불안과 불만도 커지고 있다.

업비트 이어 코인빗도 기습 상폐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코인빗은 전날 오후 10시쯤 △렉스 △이오 △판테온 △유피 △덱스 △프로토 △덱스터 △넥스트 등 8개의 가상화폐에 대해 오는 23일부터 거래 지원 중단을 예고했다. 동시에 △메트로로드 △서베이블록 △라온 등 28개에 대해선 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 코인빗에 상장된 전체 코인(70개) 중 절반 이상(36개)이 한밤중 퇴출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이 같은 조치에 해당 코인들은 80% 넘게 폭락했다. 특히 거래 지원 종료가 예고된 프로토와 렉스 등은 하루 전 대비 90% 가까이 '수직 낙하'했다. 거래 지원 종료란 주식시장으로 따지면 상장폐지(상폐)를 뜻한다. 유의종목 지정 코인들도 50~80%씩 가격이 폭락했다. 상장폐지 직전 단계를 의미하는 유의종목 지정은 상폐로 직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코인빗의 한밤중 기습 공지에 투자자들은 패닉 상태다. 가상화폐 투자정보가 오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투자금의 80~90%에 달하는 손실률을 인증하며 불만을 토로하는 하소연들이 잇달았다. 한 투자자는 "하필이면 늦은 밤 시간에 발표돼 탈출(매도) 기회도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투자자 역시 "개인 투자자들은 이런 큰 이슈 앞에서 가뜩이나 대응하기 힘든데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전했다.


9월까지 상장폐지 도미노 우려

거래소들의 이 같은 조치는 금융당국이 거래소 실사에 착수하는 등 본격적인 관리 감독에 나선 것과 무관치 않다. 특히 지난 3월부터 시행된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라 가상화폐 거래소는 오는 9월까지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사업자 신고를 마쳐야 한다. 부실 코인이 많을수록 향후 심사에서 불리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만큼, 거래소들이 선제적으로 '코인 구조조정'에 나섰다는 것이다.

애초 금융당국은 관련법 부재 등을 이유로 거래소의 코인 상장에 대해선 관여를 해오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가상화폐 광풍에도 정부가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이 일자 상장 현황을 직접 들여다보겠다는 쪽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앞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정보보호관리체계(ISMS)를 받은 20개 가상화폐 거래소에 코인 상장 및 폐지 현황 등 이른바 '코인 리스트'까지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잡코인을 정리하라는 메시지를 거래소에 보낸 것이다.

잡코인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정부가 사실상 살생부 작성에 나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생사기로에 몰린 거래소들은 정부 방침대로 앞다퉈 잡코인 솎아내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분간 거래소들의 잡코인 상폐가 도미노처럼 잇따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해외 거래소들과 달리 우후죽순 상장시킨 잡코인들은 국내 거래소들의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다"며 "수수료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거래소들이 상폐에 나선 건 그만큼 당국의 의지와 압박이 강했다는 얘기"라고 귀띔했다.

조아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