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보험은 다른 사회보험보다 훨씬 늦은 1995년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현재 형태로의 제도 변화는 다른 사회보험보다 오히려 상당히 앞선다. 이는 제도 도입 약 2년 6개월 후인 1997년 12월 발발한 외환위기 때문이다. 정부는 1998년 초부터 심각하게 악화한 노동시장 상황에 대응하여 고용보험의 적용 범위를 일 년 중 네 차례(1998년 1월, 3월, 7월, 10월)나 확대하였다. 급격한 적용 확대는 고용보험이 위기 완화를 위한 필수적인 사회안전망이라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고용보험은 이번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실업급여나 고용유지지원금의 지급 실적에서 잘 드러난다. 실직한 임금근로자 178만 명에게 고용보험료 12조2,000억 원이 지급되었다. 이는 2018년과 2019년의 약 2배와 1.5배에 해당한다. 고용유지지원금도 77만3,000명에 대한 지원금 2조3,000억 원이 7만2,000개 기업에 지급되었다. 2019년에는 1,000억 원도 지급되지 않았다.
해고 방지와 실직자의 생활안정을 위한 고용보험의 적극적인 역할은 당연히 재정 악화로 이어졌다. 정부에서 4조 원 이상을 빌렸으며 적지 않은 적자를 기록했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러한 적자는 당연한 것이며, 흑자가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수지 악화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 같다. 장기적으로 보험재정은 균형을 유지하고, 법으로 규정된 적립비율을 지켜야 한다. 규정된 적립비율을 밑돈 지 벌써 여러 해가 되었으니 우려가 당연한 것이며, 어쩌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응 조치를 세우기 전에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재정수지의 변화이다. 고용보험이 경기안정화 장치로 기능하기 때문에 노동시장 상황이 호전된다면 수지는 다시 균형으로 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전후에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고용보험 지출 항목 중 본연의 기능과 괴리가 있는 사업을 일반회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위기 대응을 위한 일시적 제도개편으로 늘어난 지출을 일반회계로 보전하는 것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의 제도 개편에 따른 지출 증가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번 정부 출범 이후 시행된 급여수급기간의 연장이나 급여의 소득대체율 인상은 수지 악화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며, 최근 많이 회자되는 반복수급 또한 근본 원인과는 거리가 있다. 수지 악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위기에 대응한 정상적인 안정화 기능의 작동이다. 지금은 수지 적자에 대한 과도한 걱정보다 고용보험 본연의 기능이 더 잘 작동되게 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