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서 본 예수

입력
2021.06.16 20:00
25면

편집자주

'이슬람교' 하면 테러나 폭력, 차별을 떠올리지만 실은 평화와 공존의 종교입니다. 이주화 이맘(이슬람교 지도자)이 이슬람 경전과 문화를 친절하게 안내,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오해와 편견을 벗겨드립니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일신교에서 주장하는 절대 신성(神性)을 정립하는 차원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종교가 동일한 대상인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차이에서 오는 반목과 불신의 골은 서로 간에 교리적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의 핵심은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느냐 아니면 이를 부정하느냐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꾸란에는 예수에 대하여 이전의 선지자나 사도들과는 다르게 그에 대한 논쟁과 이견(異見)의 핵심을 정확히 정의해 줌으로써 하나님의 복음을 인간들에게 전달한 목자로서 보다 특별한 애정과 신뢰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꾸란을 계시 받을 당시(A.D.610∼633) 기독교는 이미 예수의 신성에 대한 논란으로 아라비아반도와 주변국들 사이에 여러 종파로 분열되어 다양한 형태의 교리적 갈등이 팽배해져 있는 상황이었고 특히 유대인들은 예수가 신의 선지자임을 거부하고 마리아의 부정한 행위로 인해 출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혼란의 시기에 꾸란의 계시는 유일신에 대한 믿음의 확실한 정의와 더불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로서 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예수의 출생, 꾸란은 남자의 손길이 닿지 않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출생한 예수를 하나님의 기적으로 인정한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단지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인간으로 창조될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무엇이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유대교에서 예수의 출생에 대하여 부정하게 보는 견해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신성과 삼위일체, 이슬람을 비롯한 일신교의 특징은 유일신 사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이러한 기본 원칙을 교리의 기본으로 삼고 있는 이슬람은 유일신 하나님과는 어떤 것도 대등하게 두거나 동반할 수 없다. 그래서 믿음에 있어서 어떤 상황이든 유일신 하나님과 대등한 어떤 것을 두는 것은 다신행위로 간주되며 믿음의 최대 저해요소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어떤 잘못도 다 용서하시지만 그분의 신성을 나누는 다신행위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하지 않으신다(꾸란04:48). 그래서 이슬람적 논리에서 볼 때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하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관은 하나님의 신성을 다원화하는 행위이며 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다신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꾸란에는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그가 하나님의 사도로서 사탄의 유혹에 빠져 방황하는 인간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보내진 많은 선지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음을 강조한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또 다른 논쟁의 핵심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었다는 것이다. 정통 기독교 교회는 십자가에 의해 처형된 예수의 최후를 교리의 근본으로 삼고 이를 대속의 근거로 삼는다. 여기에 더해 그의 부활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 일부 교파에서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부정했는데 그들은 예수를 대신해 교우 중 한 사람이 처형되었으며 그의 십자가 처형은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 사실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꾸란04:157).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이슬람은 인류에게 보내진 예수의 사명과 본분에 대하여 그는 신의 사도이자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복음을 인류에게 전달하고 올바른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원죄(原罪)에 관해서도 이슬람과 기독교는 이견을 가지고 있다. 이슬람은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죄를 짓게 되지만 그들은 잘못을 뉘우쳤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순수한 회개를 받아들여 주셨다. 그래서 이슬람은 아담과 하와의 잘못을 물어 갓 태어난 순수한 어린 생명에게 원죄를 묻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관용에 반하는 모순으로 보고 있다.



이주화 한국이슬람교 서울중앙성원 이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