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려주면 제가 연 30% 정도 이자 넉넉히 챙겨 드리겠습니다. 제가 두산 오너가(家) 4세 아닙니까.”
2011년 10월, 서울 강남구의 한 빌딩. 당시 40대 였던 박중원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돈 빌려 달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빌라 4곳을 봐둔 곳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인수하려고 한다” “급히 돈이 필요하다”는 등의 얘기였다. 지인은 별다른 의심 없이, 당장 필요하다는 2,910만 원을 송금해줬다. 그는 두산 오너가인 박씨가 넉넉한 이자까지 더해 금방 돈을 갚을 것으로 믿었다.
박씨 말대로 그는 고(故)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차남이었다. 두산그룹은 창업주인 박승직 전 회장에서 2세인 박두병 전 회장을 거쳐, 3세 경영으로 넘어온 뒤 형제들이 돌아가며 회장직을 맡으며 공동 경영을 해왔다. 박씨 아버지인 박용오 전 회장 역시 1998~2005년 6대 회장을 지냈다.
다만 박씨의 주머니는 두산 오너가 4세라는 타이틀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현금 자체가 많지 않았고, 제대로 운용하는 사업체도 없었다. 무엇보다 빌라 인수 등으로 당장 수익을 내서 연 30% 수준의 이자를 더해 돈을 갚을 능력이 없었다. 내세울 거라곤 두산가 일원이란 사실뿐이었다.
박씨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부친인 박용오 전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과정에서 박용성 전 회장과 ‘형제의 난’을 겪으며 사실상 오너일가에서 제명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2005년 두산산업개발 상무를 끝으로 더 이상 두산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게다가 부친마저 2009년 세상을 떠났다.
박씨는 이후 두산 오너가 4세라는 점을 강조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절친해 이마트에 납품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재벌가 인맥까지 팔고 다니며 사기행각을 벌였다. 박씨가 이런 식으로 피해자 5명에게 챙긴 돈은 4억 9,000여만 원에 달했다.
박씨는 2012년 3월 사기 혐의로 처음 고소를 당했다. 이때부터 박씨의 ‘도피 인생’이 시작됐다. 같은 해 11월 검찰이 박씨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박씨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앞두고 잠적했다. 2013년 3월까지 도피생활을 이어가던 박씨는 서울 송파구 당구장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박씨가 재판에 넘겨질 당시 연루된 사기 사건은 4건에 달했다.
도피는 2018년 10월 선고기일이 잡힌 뒤에도 이어졌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 없이 심리하고 결정을 내리는 궐석재판을 통해 박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징역 3년형이 나오자 박씨는 항소심 법정에 나타났다. 피해자들과 합의한 점을 강조하면서 지난해 12월 징역 1년 4개월로 감형받고 법정구속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박씨는 올해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 4개월이 확정되자 수감될 상황에 놓이자, 또다시 도망쳤다. 불구속 상태에서 징역형이 확정되면 자발적으로 구치소나 교도소로 출석해야 하지만, 그는 돌연 자취를 감췄다. 수감 생활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박씨는 도피생활 동안 여러 대의 대포폰을 사용하며 수사기관의 감시망을 피했다.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서류상 등록된 주거지에서 벗어나 호텔 등을 전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박씨의 도피 생활이 두 달이 넘어가던 지난주, 드디어 그의 동선이 파악됐다. 박씨가 경기도의 한 골프연습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박씨를 추적하던 검찰은 곧장 해당 골프연습장에서 박씨를 붙잡아 형집행 절차를 밟았다.
이로써 2011년 사기 행각 이후 반복됐던 박씨의 도피 인생은 10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현재 박씨는 인천구치소에 수감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