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변인이다' 토론 배틀?... 이준석의 '공정'에 물음표

입력
2021.06.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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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5일 '이준석표 쇄신안'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처음 내놨다. 당 대변인을 인기 TV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처럼 서바이벌 토론 배틀로 뽑는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토론 배틀을 시작으로 정치 실험을 확대할 예정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 공천엔 자료 해석 능력, 컴퓨터 활용 능력 등을 검증하는 '자격 시험' 도입도 예고한 상태다.

이 대표의 실험은 흥행에선 성공하겠지만, 경쟁·시험 만능주의를 확산시킬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능력에 기반한 무한 경쟁 시스템이 공정해 보이는 건 개개인의 사회경제적 조건 차이를 무시한 착시다. 능력과 노력, 잠재력을 점수로 측정하는 것도 위험하다. 대변인 선발 방식만 해도, 상대를 제압하는 토론 능력이 공당 대변인의 자질을 충분히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이준석의 길'이 합당한 방향인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이준석표 공정 경쟁 '1탄'

국민의힘은 15일 당대변인 4명을 선출하기 위한 토론 배틀 일정과 규칙을 확정했다. 토 론배틀의 타이틀은 '나는 국민의힘 대변인이다'를 줄인 '나는 국대다'다.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MBC)에서 따왔다.

정당 대변인은 소속 국회의원이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대표는 18세 이상 남녀노소 모두에 문을 열고 '무한 경쟁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대표가 화상채팅 방식의 면접도 본다. 결선 평가는 국민의힘이 선발한 심사위원과 국민들이 한다. 1, 2등은 대변인을, 3, 4등은 상근부대변인을 맡는다. 우승자는 7월 4일 결정된다.

정치권에서 토론 배틀은 청년 정치인을 위한 이벤트로 주로 활용됐다. 이 대표가 몸담았던 바른미래당이 2018년 '청년 토론 배틀'을 도입해 우승자에게 광역의원 우선 공천 혜택 등을 준 게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같은 시스템을 국민의힘에 확대 도입해 다른 당직자 선발에도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말 잘하는 정치인이 좋은 정치인?

'시험'과 '경쟁'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정치할 기회를 우선적으로 주겠다는 것이 이 대표의 구상인 셈이다. 우려도 상당하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활동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며 "토론 능력 등 한정된 기준을 잣대로 기회를 주는 건 정치활동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짚었다. 또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학벌과 커리어,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소통과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그걸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정치를 배틀, 즉 싸움으로 보는 이 대표의 시각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영남 지역의 국민의힘 3선 의원은 "정치에 토론이 필요한 건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배려하면서 설득하기 위해서"라며 "토론조차 싸움에 붙이는 것은 위험하며, 말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좋은 정치인인지도 묻고 싶다"고 했다.


이준석표 경쟁이 '공정'한 경쟁?

이 대표는 자신의 저서 '공정한 경쟁'에서 이렇게 밝혔다. "기본적으로 실력 혹은 능력이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고 본다. 엘리트가 세상을 바꾸고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이는 중산층 출신으로, 서울과학고와 미국 하버드대 학력이라는 '스펙'을 갖춘 이 대표의 세계관이다.

문제는 이 대표식 경쟁을 도입하면 이 대표와 같은 출발선상에 서지 못한 이들이 정치에서 소외될 확률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바른미래당 출신 관계자는 "토론배틀을 '블라인드 심사'를 통해 진행했으나, 순위권에 특정 명문대 출신이 많이 발탁돼 놀랐다"고 말했다.

박권일 사회비평가는 "그간 한국 사회를 명문대를 나오고 고시를 통과한 엘리트 정치인들이 지배했지만, 국민들의 행복과 반비례한 정치력을 보여주지 않았느냐"며 "'가짜 능력주의' 대신 국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대의하는 방향의 정치실험을 할 때"라고 꼬집었다.

김지현 기자
박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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