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간에 성사가 점쳐졌던 한일정상회담이 끝내 불발되면서 양측이 서로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내세워 회담을 보이콧했다고 주장하자, 우리 정부도 격한 어조로 일본을 비난하는 등 회담 무산의 후폭풍이 ‘네 탓 공방’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14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13일(현지시간) G7 정상회의 폐막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일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은 배경과 관련,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그런(정상회담을 개최할 만한) 환경이 아니다”라며 ‘징용공(강제동원 피해자) 및 위안부 문제’의 미해결을 사유로 적시했다. 일본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강제동원ㆍ위안부 판결 문제에 한국 측이 구체적 해법을 내놓지 않아 회담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1~13일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 초청 자격으로 참석했다. 기존 G7 회원국인 미일에 더해 한국까지 한자리에 집결하면서 한일 양자, 한미일 3자 회동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었다.
스가 총리는 13일 문 대통령과의 짧은 만남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이) 인사해 나도 당연히 실례가 되지 않도록 인사했다. 바비큐(만찬회) 때에도 (문 대통령이) 인사해 왔다”고 설명했다. 상대국 정상이 먼저 예의를 차린 만큼 단순히 응대한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였다.
일본 언론이 마치 한국만 회담에 적극적이었다는 뉘앙스의 보도를 쏟아내자 우리 정부도 발끈했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14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문 대통령이 먼저 인사했다”는 일본 측 기사를 언급하며 “누가 먼저 인사했네 얘기하는 것부터가 사실 촌스럽다”고 했다. 보도의 품격을 지적한 말이었지만, 사실상 자국 언론에 이를 설명한 일본 정부를 직격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회담의 판을 깨뜨렸다”는 전언도 나왔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날 “G7 회의에 앞서 양국 실무진 간 ‘약식 정상회담’ 개최 방안을 조율하고 있었다”면서 “일본이 갑자기 한국의 ‘동해영토 수호훈련’을 이유로 약식회담을 취소했다”고 전했다. 애초에 회담 의사가 없었다는 일본 측 입장을 정면 반박한 것이다. 이 훈련은 일본 자위대의 독도 상륙 시나리오를 상정한 방어 훈련으로 1986년부터 매년 상ㆍ하반기 두 차례씩 실시해왔다. 해군은 올해도 첫 훈련을 15일 비공개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측 주장은) 사실에 반할 뿐 아니라 일방적인 발신으로 지극히 유감”이라고 부인했다.
종합하면 G7 회의에 앞서 한일정상회담을 놓고 양측이 의견을 교환한 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 역시 G7 회의 일정을 마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스가 총리와의 첫 대면은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사전 교감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정부 안팎에선 한국의 G7 회의 참석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일본의 거부감이 발목을 잡았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일본은 지난해에도 당시 G7 의장국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공식 초청하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내놨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일본은 G7의 유일한 아시아 회원국인 만큼 한국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며 “하물며 G7 회의 무대에서 한일정상회담을 열 경우 한국을 정식 멤버로 인정하는 모양새를 피하고자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