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인 유흥식 라자로 주교(70)가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됐다. 교황청 역사상 한국인 성직자가 차관보 이상 고위직에 임명된 것은 처음이다. 유 주교는 장관 임명과 동시에 교황으로부터 대주교 칭호를 부여 받았다. 유 대주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7월 말에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해서 8월 초부터 장관 업무를 시작한다”면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교황에게 직접 지혜를 구하고 도우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11일(현지시간) 교황청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유흥식 라자로 대주교를 임명했다. 성직자성은 교구 사제와 부제들의 사목 활동을 심의하고 이를 위해 주교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부처다. 신학교 관할권부터 성직자의 사회보장까지 사제들과 관련된 행정을 관장한다. 교황청은 산하에 9개의 성(행정기구)을 두며 성은 입법권과 심의·의결권, 집행권을 포함한 행정권을 행사한다.
교황은 지난 4월 교황청에서 유 대주교를 만난 자리에서 장관에 임명하겠다는 뜻을 직접 밝혔다. 유 대주교는 “2014년 방한 이후로 교황님과 깊은 친교를 나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전화를 드렸고 로마에 갈 때마다 뵀다”면서 “올해 4월 만남에서 교황님이 ‘주교님에 대해 여러 가지로 알아봤는데 여기 와서 성직자성 장관을 하면서 나를 좀 도와달라’고 말씀을 하셨다”고 밝혔다. 이어서 유 대주교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어렵다고 말씀 드렸더니 교황님께서는 '걱정하지 말고 기도하고 더 생각해보고 누구하고도 이야기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침묵을 지키라'고 하셨다”고 덧붙였다.
유 대주교에 따르면 11일 오후 7시까지 국내에선 유 대주교의 장관 임명을 아무도 몰랐다. 염수정 추기경에게도 유 대주교가 교황청의 공식발표 이후 사실을 전했다. 유 대주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전과 다르고 똑같을 수 없다”면서 “좋게도 나쁘게도 변화할 수 있는데 나만 생각하면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유 대주교는 또 “교황님이 이웃을 생각하는 형제애, 이웃사랑을 강조하시는 만큼 교회가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성직자성 장관으로서의 책무에 대해서 유 대주교는 “요즘 제일 많은 문제가 되는 것은 사제들의 미성년자 성추행 인데 말할 수 없이 부끄럽고 단절해야 할 일”이라면서 “교육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개혁의 의지를 밝혔다. 유 대주교는 “언제든지 정직하고 솔직한 마음, 열린 마음을 통해서만 좋은 길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 “숨길 수도 없고 숨긴다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것이 확실하다”라고 강조했다.
유 대주교는 2005년부터 맡아온 대전교구의 사제와 신자들에게는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고 감사하다"면서 "제대로 주교로서 살지 못해서 죄송하고 용서를 청한다"고 덧붙였다.
충남 논산 출생인 유 주교는 1979년 이탈리아 로마 라테라노대 교의신학과를 졸업한 뒤 현지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대전가톨릭대 교수·총장을 거쳐 2003년 주교품을 받았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Lux Mundi)’를 사목 표어로 삼은 유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깝게 소통하는 몇 안 되는 한국인 성직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교황은 2014년 한국을 방한해 전체 일정의 절반인 이틀을 대전교구에서 머물렀고 유 대주교가 주관한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도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