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륙남(5060세대 남성) 정당'으로 상징됐던 국민의힘이 6·11 전당대회에서 작정하고 변화를 선택했다. 원내 경험이 없는 30대 대표를 선출했을 뿐 아니라 지도부의 절반을 여성으로 채우고 비(非)영남 지도부를 구성하는 파격을 보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궤멸상태에 이른 보수정당이 생존을 위해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국회의원 경험이 전무한 '0선'의 이준석 대표를 선택한 것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위한 '전략적 투자'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국민의힘의 선택은 '안정적 변화'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탄핵 직후인 2017년 전당대회에서 홍준표(당시 63세) 대표를, 2019년 전당대회에선 황교안(당시 62세) 대표를 선출했다.
자당 대선후보 및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 출신의 60대 남성들을 연달아 당의 얼굴로 내세웠지만 추락의 길은 피할 수 없었다. 총선과 지방선거 등 전국단위 선거에서 4연패를 하면서도 변화와 쇄신에 둔감했다. 그러는 동안 유권자들로부터 '노쇠한 보수정당'이란 인식이 굳어져갔다.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의 성비위로 치르게 된 올해 4·7 재·보궐선거를 통해 반격의 기회를 찾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에 대한 공분과 맞물리면서 보수층은 물론 중도층 지지까지 끌어올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캠프의 뉴미디어본부장을 맡아 당선에 기여한 이 대표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른바 '꼴통 보수'로 꼽히는 강경파를 최대한 배제하고 극우 보수 유튜버들이 퍼뜨리는 21대 총선 사전투표 부정선거 의혹 등에 대해서도 유불리와 관계 없이 '가짜 뉴스'라고 바로잡았다. 이 대표는 당시 "일부 보수 유튜버들에게 휘둘리는 수준의 정당으로 대선 승리는 어렵다"며 "중도층과 2030세대를 끌어 모아 이기려면 유능한 보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재·보선 결과도 중도층과 2030세대 지지를 흡수한 국민의힘의 압승이었다.
재·보선 승리를 통해 내년 대선 승리 가능성을 엿본 보수층과 당원들은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당의 주류 교체'라는 극약처방을 선택했다. 연공서열을 중시하고 권위적인 보수정당으로서는 정권 교체를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간 안정적 변화를 앞세우다 젊은 세대와 중도층으로부터 외면받은 경험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번 전당대회 결과에 대해 "보수는 바뀌지 않으면 권력을 계속 잃을 수 있다는 절박감이 크다"며 "이준석 바람이 민심에 의해 추동됐지만 5060세대 보수당원들도 변화 필요성에 공감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략적 선택을 통한 승리를 맛본 보수 지지층은 앞으로도 새 지도부에 더욱 빠르고 능동적인 변화를 주문할 가능성이 크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차기 대선까지 보수와 진보 중 '누가 실점을 많이 하느냐'는 기존 경쟁 방식이 아니라 '누가 쇄신을 빠르게 하느냐'는 경쟁 구도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