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철거건물 붕괴 사고의 원인으로 건물 뒤편에 흙을 높이 쌓아 무게 중심이 도로변 쪽으로 쏠렸던 점이 꼽히고 있다.
현장에 전문가가 없어 건물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철거 작업을 조율하지 못했고, 광주시가 관리ㆍ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나와 이번 참사도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건물이 붕괴되면 제자리에서 주저앉는 경우가 많지만, 특이하게 옆으로 넘어진 점에 주목했다.
정란 단국대 건축공학과 석좌교수는 10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 방송에서 "제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지는 일반적인 붕괴 현상과 달리 옆으로 쓰러졌다는 것은 무언가가 옆으로 밀었다는 얘기"라며 "제가 판단하기에는 건물 뒤편에 쌓은 토사밖에 원인이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건물 뒤쪽에 쌓은 토사와 그 위에 올라 철거 작업을 한 굴삭기의 무게로 건물 무게 중심이 도로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데, 그에 대한 판단이 미흡했다"며 "사람처럼 건물도 수평ㆍ수직ㆍ회전이 모두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토사와 굴삭기로 인한) 옆으로 미는 하중(수평하중)으로 균형을 잃어 쓰러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도 "건물 뒤쪽에 흙을 쌓아놓고 그 위에서 포클레인이 작업했다고 하면 다른 특별한 증상이 없는 한, 포클레인의 미는 힘에 의해서 앞쪽(도로 쪽)으로 건물이 쏟아졌을 개연성이 굉장히 높다"고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건축보다 훨씬 복잡한 철거 작업을 안전하게 지휘할 구조 전문가가 현장에 배치되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 교수는 "철거 순서나 방법에 따라 그때그때 적절히 대처하면서 철거해야 하나 대부분의 현장에 구조 전문가들이 배치되어 있지 않다"며 "(광주 붕괴현장도) 이런 기술자들은 없고, 일반 작업자들만 공사한 거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조 교수도 "건물 골조에 어느 기둥에 얼마 만큼 힘을 받는지 구조 진단을 해서 균형이 항상 유지되면서 위부터 아래로 안전하게 철거하도록 작업 순서를 진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도로 통제 등 현장 주변 안전에 소홀히 한 점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했다.
조 교수는 "(가림막을 치거나 건물로 인해) 안 보이는 데에서 작업을 하면 서로 통신기를 가지고 또는 신호기를 가지고 도로 양쪽에서 통제해주는 분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며 "그런 시스템을 관리하는 정부 즉, 광주시는 감독하지 않고 뭐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전형적인 인재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과 함께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발주 기관의 감독 기능이 반드시 있어야 하나 2월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빠져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관이나 기업, 건물주가 공사를 발주할 때 건물주의 책임 또는 관에서 발주기관의 책임이 반드시 명기가 돼야 하는데 중대재해처벌법에는 그것이 없어 근본적인 모순"이라고 보완을 촉구했다.
정 교수는 "선진국들은 건물의 구조 안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 적절한 기술자들을 배치하면서 작업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구조 안전에 대한 인식이 깊지 못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