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소환' 마술 버튼… 내가 여행지에서 탐하는 것들

입력
2021.06.12 10:00
<165> 집에서 떠나는 전 세계 여행

소설가 김연수는 여행지마다 연필을 수집한다고 했다. 전 세계를 내 집으로 기어이 모셔오고 마는 세계 여행자의 수집 물품을 들여다 봤다.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며 새로운 여행을 꿈꾸는 이들이다.



이현준 사진작가(@junleephotos), 현지 맥주잔과 심플한 마그네틱



직업상 국내외 출장이 잦은 편이다. 코로나19 이후로는 국내로 집중되었는데, 스타일은 늘 비슷하다. 출장 일정의 앞이나 뒤로 개인적인 스케줄을 넣어 계획 없이 시장이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여유를 부린다. 일석이조의 워라밸을 즐기는 셈이다.

여행지에서 필사적으로 모으려는 것은 마그네틱과 맥주잔이다. 마그네틱은 여행자라면 대부분 모을 텐데, 주로 심플한 디자인의 사각형 마그네틱에 집착한다. 일본 여행 때 본 귀여운 맥주잔에 반해 독특한 맥주잔도 발견할 때마다 모은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잔이 맘에 들 때면 판매를 청하기도 한다.

태국 방콕의 수다시장에서 맥주잔에 맘을 빼앗긴 적이 있다. 집에 손님을 초대할 경우를 대비해 4개 정도는 필요하겠다 싶어 물어보니 소정의 금액만 받고 신문지에 투박하게 싸서 비닐봉지에 넣어줬다. 물론 식당 사장은 '이걸 왜 사가냐'는 표정을 지었지만(웃음). 사진을 보거나 추억을 되새기면서 여행을 그리는 것도 좋지만, 직접 만지고 사용하면서 느끼는 여행 후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팬데믹이 끝나면 여행에 소홀하지 않으려 한다. 이제까지는 마그네틱과 맥주잔을 나라별로 하나씩만 사 왔었는데, 앞으로 수량을 늘려볼 생각이다. 여행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깨닫는 요즘이다.


여하연 모닝캄 편집장(@yeohayeon), 스토리가 담긴 마그네틱과 인형




코로나19 전 ‘더 트래블러(the Traveller)’의 편집장이었던 덕에 1년에 5~6회 해외 출장을 갔다. 어느새 대도시보다는 소도시를, 관광지보다 현지인이 즐기는 장소를 선호하게 되었다. 행여나 대도시 여행을 하더라도 자연이 있는 근교 소도시 여행에 꼭 시간을 들였다.

여행지에서 사온 아이템은 내 여행의 전리품이다. 여행의 기억을 불러오는 일종의 버튼이랄까. 이 물건이 있던 나라를 떠올리고 추억하게 한다. 가장 많이 모은 건 나라별 마그네틱. 그 도시만의 스토리가 담긴 것 위주로 골랐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보라보라섬의 마그네틱은 모래를 담고 있고, 미국 유타주의 마그네틱엔 인디언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나에겐 일종의 도시의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200여 개의 마그네틱이 붙은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낯선 도시로 체크인하는 기분이 들곤 하니 말이다. 작은 위스키 잔과 더불어 대표 인형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하와이의 인디언이나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섬의 빨간머리 앤, 핀란드의 순록 등은 인형만 봐도 어느 나라인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다. 다들 코믹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한다.

만일 다시 여행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일본 교토의 니시키시장에 달려가 가쓰오부시나 소면, 절임 반찬 등을 사 오고 싶다. 해외 시장이나 마트에서 식재료도 자주 마련하곤 했다. 어쩌면 나와 평생 살아갈 물건은 이미 이대로도 충분한 것 같으니까.

김태중 아티스트(@33soul), 빈티지라면 무엇이든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더 자주 여행하고 있다. 물론 국내 여행이다. 2017년부터 오토바이를 타면서 시동을 걸었고, 작년에 캠핑밴을 구입해 개조하면서 더 불이 붙었다. 캠빙밴은 집이자 작업실이다. 전시가 잡히면 전국 팔도 어디든 작품 설치 후 근처에서 나만의 여행을 하고 돌아오곤 했다. 여기저기 목적지를 정하지 않는다. 마음이 동하는 대로 떠난다.

나는 보통 빈티지 물품을 탐닉한다. 어렸을 때부터 취향이었다. 구형 오디오와 차를 사들였고, 여건이 되지 않으면 최신형이라도 클래식한 스타일로 고르는 식이다. 당연히 여행지마다 빈티지 시장은 필수 코스. 프랑스의 한 시장에서 나무로 조각한 아프리카 마스크에 끌린 기억이 떠오른다. 처음 만난 상인이 두꺼운 아프리카 조각 책을 보이며 이것과 같은 거라며 500유로를 불렀다. 비싸다는 생각에 단념하고 다른 상인을 만났는데 똑 같은 걸 팔았다. 100유로라는데 80유로까지 깎았다. 다시 첫 번째 상인에게 가서 협상의 기술을 발휘하니 결국 55유로에 낙찰. 빈티지 물품은 정가란 게 없어 거래 시 현지인과 투덕거리는 추억을 만들기에도 좋다.

옛 물건엔 그만의 세월이 녹은 히스토리가 있다. 요즘 나오는 건 누구나 살 수 있지 않나. 빈티지 아이템은 안목이 있어야 발견하고 인연이 되어야 만날 수 있다. 나와 물건과의 유일한 관계에 퍽 끌린다. 스페셜 에디션 같은 그런 특별함 말이다.

강미승 콘텐츠디렉터@notalonehere_in_jeju), 책이 안 되면 팸플릿이라도




1년이 넘는 장기 여행과 단기 여행을 병행해왔다. 코로나19로 장기 여행을 멈추고, 언제 문을 박차고 나갈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는 중이다. 정글이나 오지가 아니라면 어디에서든 책방과 문구점에 들른다. 벼룩시장은 덤이다. 영감을 도둑질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다. 이미 넘치던 아드레날린이 콸콸 쏟아지는 장소다.

콘텐츠란 건 연결고리의 완성체다. 텍스트와 편집 구성, 그림, 사진 등 모두의 조화를 이뤄내야 하는 일이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행운 덕에 난 종이에 집착한다. 여행 기간에 맞는 크기의 몰스킨 공책을 준비해 나만의 여행책을 만들곤 한다. 여기에 입장권이나 영수증, 팸플릿, 지도 등을 모은다. 별도로 일러스트나 미술 작품집 위주의 책을 배낭에 꾸려온다. 때론 읽지도 못하는 주제에, 표지 하나에 매료되어 살 때도 있다.

장기 여행 시엔 책 구매는 거의 포기 단계에 이르러 아이쇼핑을 한다. 짐이 될 염려가 적은 미니북에 한해 구입하고, 기어이 소유욕을 억제하지 못하면 국제 우편을 이용해 한국으로 보낸다. 이 모든 게 콘텐츠를 만드는데 살이 되고 피가 된다.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대단한 활약을 한다. 한 번 간 여행지를 다시 가기보다 낯선 여행지를 찾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종이 물품이 그 나라를 끌리게 하는 주범일지도.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