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적 민주주의가 오고 있다

입력
2021.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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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이겨라. 국가를 장악하라. 권력으로 정의를 실현하라. 여론과 지지자를 동원해 반대를 제압하라. 이것이 시민 참여다. 잘못을 인정하면 진다. 상대는 교활하다. 차라리 논란을 만들어라. 밀리면 죽는다. 한국 정치의 정신 상황을 말하라면 대략 이렇지 않을까 한다. 권력 투쟁이라는 하나의 가치가 지배하는 정치 상황이다.

필자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아도 되는 민주주의를 바란다. 아나키스트도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이야기하고, 사회주의자도 혁명 대신 정당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정치는 늘 다원적 의견들로 넘쳐나야 하고, 국가 권력의 자의성은 견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당신의 주장이 공익적 열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릅니다”라거나, “다르지만, 우리도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정치가들이 많아져야 민주주의도 정치도 작동할 수 있다. 달라야 협력할 수 있다. 가치 체계(value system)가 다른 여러 정치 세력들이 경합할 때 민주주의의 좋은 점이 발휘된다. 그렇지 않고 협치와 민생, 국민 행복, 선진 경제 등 모두가 똑같은 가치 지향을 말하며 서로를 밀어내는 정치는 역설적이게도 적대적 공생의 양극화 정치를 낳는다.

정치가가 갖춰야 할 으뜸의 덕목은 책임감과 균형감이다. 책임감은 ‘설명하다’에서 유래된 말이다. 타자의 ‘합리적 의심’은 가치가 있고 책임 있게 응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균형감은 하나의 옳음이 아니라 여러 옮음‘들’ 속에 정치의 역할이 있음을 말한다. 신이 아닌 한 ‘무지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공익이 무엇이고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확고한 판단은 분명할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공익이란 이견, 다름, 차이 속에서 논의되고 조정된 끝에 ‘불완전하게 합의된 잠정적 결론’을 뜻한다. 균형 감각 없는 정치가는 그저 ‘자신이 옳기 위해 정치하는 독단적 권력자’일 뿐이다. 그가 권력을 더 많이 가질수록 민주주의는 위태로워진다.

정의도 상대적이다. 때와 조건에 상관없이 모두가 따라야 할 준칙이 있다면 정의로운 공적 결정은 용이할 테지만, 그것은 인간의 현실이 아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법률과 규칙을 만들고 적용하고 실천하면서 협력과 조정, 합의를 이끌어가는 노력은 그래서 필요하다. 법과 절차, 규정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불완전하다. 하지만 정의로운 국가, 자유로운 권력은 더욱 불완전하며, 만약 그런 국가가 등장한다면 재난적인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정의를 앞세워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함부로 해도 되는 사회, 지루한 법 절차보다 즉각적인 사적 처벌이 환호받는 사회, 생각이 다른 집단을 공격하는 것을 정의감의 발로로 착각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국가뿐이다. 최고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곧 정의’가 되는 정치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일단 권력 게임에서 이기고 봐야 하는 정치가 지금 우리 앞에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만 높으면 되는 정치에 모두가 매진하고 있을 뿐이다. 신념이나 이념 같은 다원적 정치의 핵심 요소들은 쓸데없는 것이 된 지 오래다. 모두가 국가가 되고자 하면서, 국민-민심-민생만 찾는 ‘전체주의적 민주주의’가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