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 강남 사옥

입력
2021.06.07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대리점 갑질과 오너 일가 일탈, 코로나 예방 효과 논란으로 결국 주인이 바뀐 남양유업은 원래 본사 건물이 없는 무사옥 경영을 고수했다. 창업주인 고 홍두영 회장은 "기업은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며 40년 넘게 서울 을지로입구의 한 건물에 월세로 살았다. 간판도 못 달았다. 대신 공장과 연구소를 짓는 데에 집중 투자했다. 무사옥에 이어 무차입, 무분규, 무파벌의 '4무 경영'은 남양유업의 대명사가 됐다. 창업주 고향이 평안북도 영변인 탓에 땅에 연연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나왔다. 창업주는 2010년 ‘정치와 부동산 투기는 절대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 그러나 이후 남양유업은 사옥 건립을 추진했다. 2016년 수입차 매장이 즐비한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사거리에 15층 건물을 올렸다. 매출 1조 원이 넘는 회사가 번듯한 사옥을 갖는 걸 나무랄 일은 아니다. 제집이 생기면 임대료도 아낄 수 있다. 그런데 이 빌딩의 주인은 남양유업이 아니라 자회사인 금양흥업이 됐다. 본사 건물이 생겼는데 전보다 훨씬 많은 임대료를 자회사에 지급하는 기이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 공교롭게 이때를 전후로 악재가 잇따랐다.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하면서 물량 밀어내기를 한 녹취록이 폭로되고, 창업주 외손녀가 마약 혐의로 구속되는 일도 벌어졌다. 발효유 제품(불가리스)이 코로나를 억제한다는 과장 발표에 소비자 실망은 분노로 변했다. 결국 총수가 사퇴하고 회사는 매물로 나왔다.

□ 남양유업의 쇠락을 사옥으로만 설명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남양유업이 ‘우량아선발대회’를 열면서 남양분유가 선풍적 인기를 끈 1971년엔 신생아가 103만 명이나 태어났다. 지난해 신생아 수는 27만 명에 그쳤다. 그만큼 세상이 변했다. 그래도 지킬 게 있다. 창업 정신을 망각한 채 부동산에 한눈을 파느라 본업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고객 신뢰도 잃은 건 아닌지 안타깝다. 남양유업의 경쟁사로 똑같이 사옥이 없었던 매일유업은 여전히 셋집살이다. 이북 출신으로 매일유업 창업주인 고 김복용 회장은 "으리으리한 건물엔 주고객인 농민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무엇이 두 기업의 운명을 갈랐는지 보여준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