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에 기댈 것 없다"... '자립 투쟁' 의지 다지는 미얀마 시민들

입력
2021.06.07 17:09
아세안기 화형식에 反아세안 전국 시위 들불
민주진영, '中·아세안 사전 교감' 의심 눈초리

쿠데타 군부만 만나고 돌아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에 대한 미얀마 시민사회의 반감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아세안은 거센 비난에 정식 특사를 파견하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격앙된 민심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얀마인들은 지역 외교가의 중재에 기댈 수 없게 된 만큼 ‘자립 투쟁’ 의지를 더욱 다지고 있다.

7일 이라와디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만달레이 대학연합은 아세안 방문단이 군부와 면담한 직후인 5일 도심에서 아세안기를 태우는 ‘화형식 퍼포먼스’를 했다. 이들은 “아세안은 지긋지긋한 간섭을 그만두고 미얀마에서 떠나라”고 일갈했다. 양곤 등 대도시와 몬주(州) 등 지방에서도 연일 반(反)아세안 시위가 열리고 있다. 시민들은 이날 미얀마 국기와 민주세력을 대표하는 국민통합정부 깃발을 높이 들고 “우리 스스로 군부를 몰아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도 아세안을 비난하는 글로 넘쳐난다. 한 시민은 아세안의 영문 이니셜을 이용해 “아세안(ASEAN)은 항상(Always) 이기적이고(Selfish) 자기중심적이며(Egocentric) 노회한(Adroit) 이웃(Neighbors)이었을 뿐”이라고 조롱했다. 일부 네티즌은 군부 수장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아세안에 안겨 있는 합성 사진을 만들어 유포하기도 했다. 미얀마인들은 ‘군부와 아세안을 거부하자(#RejectCoupRejectASEAN)’는 해시태그와 함께 해당 게시물을 폭넓게 공유하고 있다.

아세안을 군부의 ‘뒷배’인 중국과 같은 적(敵)으로 분류하는 기류도 포착된다. 시민사회는 5일 “중국은 아세안의 미얀마 사태 개입을 지지한다”는 천 하이 주미얀마 중국 대사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아세안의 군부 독대 직후 중국이 지원 사격에 나선 것만 봐도 양측을 군부의 핵심 후원자로 봐야 한다는 논리다. 여기에 운나 마웅 르윈 군부 외교장관이 이날 ‘중국ㆍ아세안 대화 구축 30주년 기념 특별회의’에 초대된 점 역시 민주진영의 의심을 키우는 요인이다.

아세안은 이번 방문이 본격적인 중재를 위한 ‘사전 논의’ 성격에 불과하다고 거듭 해명했다. 아세안은 성명을 통해 “4월 정상회의 합의사항이 시의적절하게 실행되기 위해 아세안이 어떤 역할을 해야할 지 논의하는 자리였다”며 “미얀마 모든 진영과 대화할 아세안 공식 특사 후보 명단도 군부에 제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역시 가해 당사자에게만 협조를 구했다는 점에서 균형감을 잃은 조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케네스 로스 사무총장은 군부에 편향된 아세안의 행보 배경을 “대다수 회원국이 골치 아픈 인권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아세안 10개국 중 미얀마ㆍ태국은 군부가 집권하고, 캄보디아ㆍ필리핀은 장기 독재 중이며, 베트남ㆍ라오스는 사회주의 국가다.

자립투쟁의 구심점이 될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은 여전히 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이날 미얀마 1심 법원은 수도 네피도의 시의회에 마련된 특별법정에서 수치 고문에 대한 2차 변론기일을 열었다. 재판부는 향후 법정에 부를 증인 등을 점검한 뒤 오는 14일부터 집중 심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심리가 예정대로 열릴 경우 수치 고문의 1심 결과는 이르면 8월 중 나올 전망이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