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마을 흔적까지 지우다

입력
2021.06.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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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리디체 학살

2차대전 나치 하인리히 힘러 치하의 무장 친위대(SS) 정보부대인 SS보안방첩대 수장을 지낸 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현 체코) 총독 대리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1942년 6월 4일 사망했다. 해군 장교 출신으로 힘러의 눈에 들어 친위대에 발탁된 그는 '프라하의 도살자'라는 별명처럼 유대인 색출과 레지스탕스 소탕전에서 악명을 떨치며 승승장구, 숨질 무렵에는 힘러를 위협할 만큼 세력을 키웠다. 그는 1942년 5월 27일 출근길에 프라하 교외 고속도로에서 영국서 훈련받은 체코 레지스탕스의 폭탄 공격에 중상을 입고 일주일여 만에 사망했다. 정작 자신에 대한 테러 정보는 입수하지 못한 거였다.

히틀러가 직접 보복을 지시했다. 암살 작전에 협력했다는 의심을 산 사건 현장 인근 마을 '리디체(Lidice)'를 철저히 응징하라는 명령이었다. 6월 9일 아침, 마을에 들이닥친 무장 친위대원 200여 명은 남성 173명을 집단 사살했다. 여성 53명과 어린이 82명도 강제수용소 등에 분산 수감돼 대부분 순차적으로 학살되거나 실종됐다. 가축과 애완동물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치는 마을에 불을 지르고 남은 구조물을 폭파했으며, 군대와 죄수들을 동원해 잔해마저 건설 중장비 롤러(Rolles)로 산산조각냈다. 그리고 체코의 모든 공식 기록물에서 리디체라는 이름 자체를 삭제했다. 마을의 흔적조차 지운 거였다. 2주 뒤 나치는 인근 마을 '레자키(Ležáky)' 역시 파괴했고, 성인 33명은 학살하고 아이들은 수용소에 수감했다. 하이드리히 암살로 약 1,300여 명이 희생됐다.

이 만행이 연합국에 알려져 전 세계가 분노하며 결속했다. 미국·멕시코 등 여러 국가 여러 마을이 자신의 마을 이름에 '리디체'를 넣어 만행을 기억했고, 애도의 음악과 기록물이, 영화가 잇달아 만들어졌다. 현재 마을 터에는 작은 장미 정원과 82명의 아이들을 형상화한 청동조각상이 서 있다.(내일자 계속)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