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은 부산의 부랑인 강제수용소였다. 1975년 육아원에서 부랑인 시설로 개편된 이후 1980년대에 빠르게 몸집을 불렸다. 한때는 3,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연인원 4만 명에 가까운 인원이 부랑인이란 명목으로 수용됐고 폭력과 강제노동에 노출됐다. 노숙인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자,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잠들었던 회사원, 가족이나 친척을 만나려고 기차를 탔던 어린이, 귀가하던 청소년,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이 부랑인이라는 명목으로 잡혀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500명이 넘게 사망했다. 정부에게 이러한 ‘시설’들은 고민거리를 눈앞에서 치워주는 고마운 존재였다. 법과 통치행위로 뒷받침했다. 여기까지는 사회적으로 이견이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김재형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한국사회도 비극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분석한다. 독재정권들이 강제수용을 주도한 사실은 명백하지만 그 배경에는 사회의 묵인과 방조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 사실을 인정해야 '시설사회'로 변해가는 한국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는 주장도 뒤따른다. 김 교수를 비롯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형제복지원연구팀은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지난달 학술서 ‘절멸과 갱생 사이’를 내놨다.
2일 서울 대학로의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운동이 공론화된 지 9년째를 맞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강제로 수용됐는지는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 피해자 단체들이 피해자를 규합하는 가운데 지난해 개정된 '과거사법' 개정안에 따라서 출범한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진상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2018년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이 1987년 검찰의 형제복지원 수사 축소를 사과하고 재심리를 요청했지만 대법원은 형제복지원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는 무죄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정부 차원의 공식사과는 없었다.
김 교수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 인정, 사과가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박정희 정권이 1975년 내무부 훈령 410호를 발령해 도시하층민을 부랑인이라고 낙인 찍고 수용시설에 격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 역시 1981년 총리지휘서신을 통해서 '부랑인'에 대한 대대적인 일제 단속을 벌였다. 이후 구걸행위자보호대책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적으로 부랑인 수용시설을 증설하고 대규모 단속, 수용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나 공무원에게 단속 실적을 근거로 근무평점을 부여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이 부랑인으로 잡혀가기도 했다. 이들 정권은 노동력 확보와 치안 유지라는 명목으로 이러한 만행을 벌여왔다.
김 교수는 형제복지원은 누구나 겪을 수 있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어린 시절 부산에서 길을 잃은 경험이 있다면서 “똑같이 길을 잃은 아이가 두 명 있었는데 나는 다행히 부모가 찾아와서 데리고 돌아갔지만 어떤 아이는 형제복지원으로 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누구나 겪을 수 있었던 일인데 저는 운 좋게 살아남았던 거예요.”
그런 맥락에서 사회는 형제복지원의 피해자인 동시에 협력자였다. 김 교수는 “흔히 독재정권은 원래 폭력적이어서 극악한 사건들을 발생시켰다고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얻으려 했다”면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알았지만 침묵했고 적극적으로 부랑인을 신고하기도 했다”면서 “국가의 책임뿐만 아니라 사회의 책임도 이야기할 때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 협력을 바탕으로 한국에서는 민간 복지시설을 중심으로 몸을 사고파는 시장이 형성됐다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모습을 두고 한국은 '인신매매 국가'였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형제복지원과 여러 시설을 거쳤던 피해자의 구술을 들어보면 처우는 별 차이가 없었다”라면서 “민간업자들이 복지시설을 운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운영자가 선의를 가졌더라도 정부가 한 명당 얼마, 이렇게 예산을 지급하는 상황에서 수용자 처우는 열악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김 교수에 따르면 형제복지원의 유산은 현재도 이어진다. 형제복지원 폐쇄 이후 부산에서 정신질환자 수용시설이 급격히 늘었고 이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형제복지원의 ‘운영 노하우’가 전국으로 퍼진 것이다. 김 교수는 “정신질환자 요양소는 나중에는 정신병원으로, 정신병원은 다시 종합적 의료재단으로 전환됐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1990년대부터는 노인 관련 시설로 변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과거보다 복지시설의 폐해가 많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이윤을 추구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면서 "민간 사업자들에게 사회의 책임과 국가의 책임을 주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선의로 시설에서 근무한 사람들에게도 도의적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그런 부분을 논의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고 대답했다. 김 교수는 "시설에도 수용자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시설은 기본적으로 폭력적인 곳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제시대부터 수용시설이 설립돼 한때 한센병 환자를 강제로 수용했던 소록도가 대표적 사례다.
결국은 '부담되면 시설로 보낸다'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 시설사회를 그대로 둔다면 누구든 시설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경고다. “오늘날에는 노인이 되면 시설로 가는 분위기가 형성됐죠. 무엇보다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하면 괜찮을까 생각해 보세요. 시설만이 해법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노인이나 장애인, 정신질환자와 같이 살아도 내가 부담되지 않는 사회, 내가 그렇게 될까 걱정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