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국민 다수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자국이 상대국에 좀더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중국과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최악인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에는 공감했다.
여론조사 결과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고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자국이 지금보다 더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에 한국인의 79.4%, 일본인의 59%가 동의하지 않았다. 동의한다는 의견은 한국 18.2%, 일본 30%에 그쳤다. 반면 “미국은 중국과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제한 뒤 한일 관계 개선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는 한국인과 일본인 각각 68.4%, 68%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과거사 문제에는 양보할 수 없지만 안보 때문이라면 관계 개선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압박 때문에라도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한일 양국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양국 국민의 상대국 지도자에 대한 신뢰는 극도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일본 미국 중국 북한 등 5개국 지도자에 대한 신뢰도 조사 결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에 대한 한국 국민의 신뢰도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일본 국민의 신뢰도는 각각 6.8%와 8%로 10%조차 안 됐다. 반면 상대국 지도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한국 84%, 일본 80%에 달해 극도의 불신을 드러냈다.
이들 두 지도자는 자국에서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의 신뢰도는 45.5%로 ‘신뢰할 수 없다’(49.1%)보다 적었고, 스가 총리에 대한 일본인의 신뢰도도 41%로 ‘신뢰할 수 없다’(50%)에 못 미쳤다. 한일 지도자 모두 상대국에 대한 자국민의 부정적 감정을 거스르면서까지 한일 관계 개선을 추진할 정도로 충분한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올해 취임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 대해서는 한일 양국 국민 모두 긍정적인 기대를 보였다. 한국인의 54.5%, 일본인의 59%가 바이든 대통령을 ‘신뢰할 수 있다’고 답했다. ‘신뢰할 수 없다’는 한국 29.3%, 일본 21%에 그쳤다. 반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서는 한일 양국 모두 10명 중 8명 이상이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중국과 북한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바이든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압박할 경우, 자국 정부가 이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더라도 양국 국민들이 어느 정도는 납득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