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해소제 이중뚜껑…플라스틱 3400톤 버려졌다

입력
2021.06.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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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사지 않을 권리] <12>이중뚜껑


편집자주

기후위기와 쓰레기산에 신음하면서도 왜 우리 사회는 쓸모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생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걸까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은 그동안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편의점 건강음료 칸에는 유독 화려한 모습의 제품들이 있다. 바로 숙취해소제다. 반짝이는 라벨에 연예인의 얼굴까지 붙은 디자인뿐 아니다. 다른 건강음료와 큰 차이를 보이는 건 바로 뚜껑.

단순한 알루미늄 뚜껑을 쓰는 자양강장제나 비타민음료와 달리, 유독 숙취해소제 중에는 알루미늄에 플라스틱을 덧붙인 이중뚜껑이 많다.

숙취해소제든 비타민음료든 모두 ‘혼합음료’이며, 처방이나 주의 없이 언제든 누구나 사먹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숙취해소제만 겉모습이 다를까.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의 질의에 업체들은 "뚜껑으로 총알처럼 빠르게 숙취를 해소해주는 콘셉트를 표현" "술취한 상태에서 뚜껑을 열 때 안전사고가 나지 않게" 등의 이유를 댔다. 여러 모로 납득이 되지 않는 답변이 많았다.

음료 뚜껑의 크기가 크지 않다고 해도, 누적 판매액에 따르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한다. 더구나 이 뚜껑들은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을 덧댄 이중구조라서 재활용이 불가하다.

한국일보가 숙취해소제의 이중뚜껑에 사용된 플라스틱 양을 측정한 결과 지금까지 최소 약 3,400톤이 사용되고 폐기됐을 것으로 보인다.

플라스틱 생산과 소각 과정에서 배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온실가스는 약 2만 톤. 나무 51만 그루를 10년간 길러야만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양이다. 이는 판매량을 공개한 일부 제품만을 계산한 최소한의 양이다.


알루미늄 뚜껑 위 8배 무거운 플라스틱 씌워

숙취해소제 뚜껑에 쓰이는 플라스틱 양이 어느 정도인지 총 8종의 무게를 분석해봤다. 판매량 1, 2위를 차지하는 이노엔의 컨디션 3종, 동아제약의 모닝케어 3종과 기타 유사한 형태의 숙취해소제 2종이다.

뚜껑 플라스틱 무게는 전체 뚜껑 무게에서 일반적인 알루미늄 뚜껑의 무게(2g)를 빼는 방식으로 측정했다. 8가지 제품 모두 두 재질을 분리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우선 컨디션 3종인 컨디션헛개, 컨디션레이디, 컨디션CEO. 앞의 두 제품은 플라스틱 뚜껑의 무게가 5g으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반면 컨디션CEO의 갓 모양 금빛 뚜껑은 플라스틱의 무게만 10g으로 추정됐다. 용량이 150㎖로 다른 제품(100㎖)에 비해 다소 많아서인지 뚜껑도 마치 어린아이 주먹 크기로 묵직하다.

모닝케어 3종의 생김새는 모두 같다. 이중뚜껑에는 유리병의 절반을 덮는 긴 플라스틱이 붙어 있고, 그 위를 투명한 라벨이 덮고 있다. 뚜껑의 전체 무게는 18g이다. 알루미늄 뚜껑 무게를 빼면 무려 16g이 플라스틱인 것이다.

나머지 두 제품은 종근당의 헛개땡큐, 광동제약의 헛개파워다. 두 제품 역시 이중뚜껑인데 알루미늄 뚜껑 무게를 뺀 플라스틱 무게는 각각 7g, 8g으로 추정된다.


분리배출 불가... 3,400톤 이상 일반쓰레기로 폐기

뚜껑에 사용된 플라스틱은 재활용되는 것 없이 모두 버려진다. 재활용을 하려면 재질별로 분리배출을 해야 하는 데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이 접착제로 붙어 있어 따로 떼내는 것부터가 불가능하다.

대부분 물질재활용이 가능한 폴리에틸렌(PE) 재질임에도 결국 일반쓰레기로 버려져 소각ㆍ매립하는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올해 3월부터 시행된 환경부의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표시’에서도 이 같은 뚜껑은 ‘재활용 어려움’으로 분류됐다.

컨디션 제조사인 HK이노엔에 따르면 컨디션 3종은 출시 후 2018년까지 약 6억5,000만 병이 팔렸다. 뚜껑 플라스틱 무게를 5g으로 계산하면 그간 최소 3,250톤(32억g)의 플라스틱이 쓰인 것이다. 컨디션CEO의 무게까지 고려하면 그 양은 더 많아진다.

연구자들은 플라스틱 1㎏당 약 6㎏ CO₂e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CO₂e는 이산화탄소와 메탄, 이산화질소 등 여러 온실가스를 탄소배출량으로 환산한 '탄소환산량'이다. 따라서 컨디션 이중뚜껑 플라스틱으로 배출된 온실가스는 1만9,500톤. 미국 기후환경국(EPA)에 따르면 이는 나무 약 50만 그루를 10년간 길러야 모두 제거할 수 있는 양이다.

모닝케어 제조사인 동아제약에 따르면 플라스틱 뚜껑 무게가 16g에 이르는 디자인은 지난해 5월 출시됐다.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판매수익은 약 84억 원. 1병 가격(5,000원)으로 계산하면 168만 개가 판매된 셈이다. 그렇다면 약 26.88톤의 플라스틱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탄소배출량은 161.28톤이다.

디자인이 바뀌기 전의 모닝케어 제품은 컨디션과 유사한 구조의 이중뚜껑을 사용했다. 병당 플라스틱 사용은 적었지만 누적량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2005년 출시 이후 약 1,000억 원(2,000만 병) 넘게 판매됐다. 그동안 사용된 플라스틱은 약 100톤 정도로 추정된다.

종근당의 헛개땡큐는 2001년 출시 이후 매년 2억5,000만 원어치가 팔린다고 한다. 연간 5만 병, 19년간 약 95만 병이 판매됐다. 그간 사용된 플라스틱 양은 약 6.65톤이다.

헛개파워의 판매량은 광동제약에 수차례 문의했지만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제조사 "알루미늄 뚜껑 안전사고 우려"... 그럼 박카스는?

이중뚜껑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한 제조사들의 답은 크게 두 가지였다. 디자인과 안전이다.

국내 숙취해소제 시장 규모는 한해 약 2,400억 원. 매년 새 제품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제조사들은 디자인을 통해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으려 한다. 동아제약은 “모닝케어는 총알처럼 빠르게 숙취를 해소해주는 컨셉을 표현하고자 차별화된 디자인을 사용했다”라고 답했다. HK이노엔의 컨디션CEO는 출시 당시부터 “고급스러운 패키지(포장)로 주목성을 높였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판매 경쟁만 신경쓰며 환경 문제를 외면하는 기업들의 안이한 인식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제조사들은 또한 “숙취해소제 뚜껑에 손이 베이는 사고를 막기 위해 이중뚜껑을 썼다”고 설명했다. 이 부분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들 제조사들이 판매하고 있는 박카스(동아제약), 홍삼진드링크(HK이노엔), 위생천(광동제약) 등 제품은 성인은 물론 청소년이나 어린이도 마실 수 있지만 알루미늄 뚜껑만 사용한다.

이에 대해 HK이노엔 측은 “숙취해소제를 마시는 소비자들은 주로 술에 취한 상태라는 것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적은 힘으로 개봉해 마시도록 고려했다”는 것이다. 술을 먹고 찾는 것인 만큼 소비자가 제대로 힘을 쓸 수 없고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것.

하지만 제조사들 대부분이 권장하는 숙취해소제의 복용 시기는 ‘음주 전’, 즉 취하기 전이다. 동아제약은 “음주 중간, 후에도 먹을 수 있는 제품이기에 안전성을 더 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루미늄 뚜껑이 위험하다는 피해사례는 찾기 어렵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음료 뚜껑과 관련한 위해 신고는 지난해 6건, 2019년 13건이다. 이는 재질 상관없이 모든 뚜껑에 대한 사례를 합산한 결과라 알루미늄 뚜껑과 관련한 위해 여부를 알기는 어려웠다. 알루미늄에 의한 위해가 발생하는 경우는 주로 통조림 뚜껑이었는데, 관련 신고는 매년 200여 건이 넘는다. 이에 비하면 음료 뚜껑 관련 신고는 미미한 수준이다.

제조사들은 안전을 강조하면서도 모순된 태도를 취한다. 종근당 관계자는 "안전문제가 있지만 모든 제품에 이중뚜껑을 쓰면 가격이 올라 소비자들에게 부담"이라며 "(숙취해소제 등) 일부 제품에 마케팅 차원으로 포장을 고급스럽게 하는 건 각 업체가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명절 선물세트 스팸 뚜껑 빼니 플라스틱 20톤 줄여

지난해 소비자들은 ‘스팸 뚜껑 반납하기 운동’을 벌였다. 단단한 캔만으로도 충분히 견고한데, 굳이 상품 보호 명목으로 플라스틱 이중뚜껑을 붙여 파는 기업의 행태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에 스팸 제조사인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에 판매한 스팸에서 플라스틱 뚜껑을 뺐다. 명절 선물세트에만 시행한 일시적인 저감조치였지만 효과는 컸다. 플라스틱 뚜껑 약 20톤을 줄였기 때문이다.

숙취해소제, 스팸은 물론 일반 음료도 플라스틱을 한 겹 더 붙인 이중뚜껑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중뚜껑만 없애도 플라스틱 사용량은 크게 줄어든다.

기업이 먼저 결단을 내려야 하지만 정부의 역할도 필요하다. 현행 포장 규제는 플라스틱 사용량 자체를 줄이는 것보다는 포장재가 재활용이 가능한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이중뚜껑이더라도 플라스틱 속뚜껑에 또 다른 플라스틱 뚜껑을 덮은 음료는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다. 같은 재질의 뚜껑 두 개가 붙어 있어 ‘재활용 보통’ 등급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알루미늄과 플라스틱을 덧댄 이중뚜껑은 ‘재활용 어려움’으로 분류돼 제조사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분담금을 20% 더 내야 하지만, 플라스틱을 이중으로 사용한 제조사는 추가 부담이 없다.


재활용 여부 따지기 전, 사용량 자체를 줄여야

정부도 맹점을 알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질 중심의 재활용 용이성 분류가 플라스틱 과소비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며 “포장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의 비중이나 용량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포장 규칙을 개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수불가결한 플라스틱이 아니라면 최대한 줄이고 빼야 한다. 최은주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상임이사는 “플라스틱의 3R원칙, 즉 ‘감축(Reduce)·재사용(Reuse)·재활용(Recycle)’에서 감축이 가장 중요하지만 간혹 재활용이 된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줄 때가 있다”며 “정부가 최근 마트의 재포장 상품을 금지한 것처럼 이중뚜껑에 대해서도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규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영상제작= 현유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