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이 4일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80분 만에 수용했다. 사실상의 경질이라는 뜻이다. A중사 사망 사건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지 나흘 만이다.
군 최고 지휘관인 참모총장이 성폭력 사건 대응 실패로 물러난 것은 창군 이래 처음이다.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군 최고 지휘부가 경질된 것도 이례적이다. 국민의 분노가 크고,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이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청와대는 수사 상황에 따라 서욱 국방부 장관을 추가 경질할 가능성도 열어 두고 있다.
이 전 총장은 "성추행 공군 사망 사건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고인에게 깊은 애도와 유족께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면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사의를 표명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취임했다.
이 총장의 불명예 퇴진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 지난 3월 성추행을 당한 공군 소속 A중사가 상부의 조직적 은폐 시도와 2차 가해에 괴로워하다 지난달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군의 대응은 '총체적 무능'이었다. A중사를 성추행한 상관이 최소 2명 더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수뇌부 문책은 '시간문제'가 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격노했다. 3일 "최고 상급자까지의 보고·조치 과정을 포함해 지휘 라인 문제도 살펴보고 엄중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했고,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굉장히 가슴 아파한다"(2일) "문 대통령의 목이 메었다"(3일) 등 문 대통령이 격분한 사실을 가감 없이 알렸다.
이에 따라 서욱 국방부 장관이 연쇄 경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최고 지휘라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면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살펴보고, 문제가 있다면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서 장관 경질까지 검토하느냐는 질문엔 "(수사) 과정을 지켜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전 총장 경질만으로도 상당한 '충격요법'인 데다 장관 교체 시 국회 인사청문회 리스크가 생기는 만큼, 문 대통령이 서 장관 거취 문제는 보다 신중하게 고민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군 당국 수사는 뒤늦게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군검찰은 4일 충남 계룡대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제15특수임무비행단 군사경찰대대를 압수수색했다. 15비행단은 이 중사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전속한 부대다. 유족들은 A중사가 15비행단에서도 '관심 병사' 취급을 당하는 등 2차 가해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국방부 조사본부도 A중사의 성추행 피해 당시 소속 부대인 20비행단 군사경찰대대에 성범죄수사대를 투입했다. 성범죄수사대는 부대에 상주하면서 초동 수사 상황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