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여 중사 성추행 사망사건과 관련해 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이 4일 사퇴했다. 공군의 최고책임자가 물러났지만 이번 사건은 초급 간부들부터 최고 지휘관들까지 군내 성폭력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어느 조직보다 신속한 보고가 생명인 군에서 최고 지휘관들이 보여준 ‘늑장보고’ 행태에 입을 다물 수 없다.
군의 ‘성폭력 예방활동 지침’에 따르면 각군 본부는 모든 성폭력 사건을 인지한 즉시 국방부에 보고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무용지물이었다. 피해자는 지난 3월 3일 군사경찰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사건은 1개월여가 지난 다음 달 7일에야 군 검찰에 송치됐다. 참모총장은 다시 1주일이 지난 14일에야 이 내용을 보고받았고 그가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한 시점은 한 달여가 경과한 지난달 25일이었다. 피해 신고에서 국방부 장관 보고까지 무려 3개월 가까이 소요된 것이다. 심지어 피해자가 속해 있던 부대 지휘관인 비행단장은 2차 가해 의혹까지 받고 있다고 한다.
분노를 넘어 무력감까지 느껴진다. 보고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최고 지휘관들 역시 이번 사건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물러난 공군 참모총장뿐 아니라 보고를 받은 뒤 공군에 자체 수사를 맡기려 했던 서욱 장관의 태도도 무신경하기 이를 데 없다. 가해 당사자와 2차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수사는 물론이고 보고 지연, 누락 경위에 조사와 문책이 엄중히 이뤄져야 사건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군은 명심하기 바란다.
사건이 터지자 현장 간부들은 피해자에게 ‘한 번만 용서해라’ ‘여러 사람 다친다’며 은폐와 회유, 협박을 일삼았고 이들을 감독할 최고 지휘관들은 늑장보고로 일관했다. ‘우리 군의 주적은 간부’라는 병사들의 우스갯소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런 군을 어떻게 믿고 아들딸을 군에 보낼 것인가. 언제까지 군의 각성과 쇄신을 기대해야 하는가.